2007년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을 꾸준히 올린 10년 만인 2017넌 '골목의 전쟁'을 출간한 김영준 작가. '1만 시간의 법칙'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재까지 초판 10쇄가 재판되며 꾸준한 인기와 주목을 받고 있다. 무명작가로 시작하여 지난 2월 4일 그의 신간인 '멀티팩터: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을 출간하기까지. 김영준 작가와의 솔직, 담백 가득한 인터뷰가 시작된다. * 2018년, 카페에서 일하던 중. 김영준 작가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은 직장인과 다르기에 좋아 보일수 있으나 매일매일 카페에 출근을 하다보면 결국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라고 말한다. [출생] 1983년 9월 9일 [학력] 성도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경력] 2007년~現 네이버 블로그 ‘Second Coming’ 운영 2010년~2012년 IBK 기업은행 잠실지점 외환/기업여신 계장 2017년 골목의 전쟁 (스마트북스) 저자
[미디어 출연 및 강연] >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TBS 민생연구소 > 부산시 인재개발원 글로벌인재개발양성과정 > 서울신용보증재단 > 동서식품 > 현대홈쇼핑 > 흥국증권 리서치센터 외 [칼럼 연재] > 허핑턴포스트 > 시사인 > 오마이뉴스 > 서울신문 > 비즈한국 외 現 서울신문,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기고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골목의 전쟁]의 저자 김영준이라고 합니다. 2007년부터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경제 및 사회현상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으며, 이번에 [멀티팩터 :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이란 책을 새로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대학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입사 한 IBK 기업은행에서. 2011년 연수 당시 동기들과 함께. 학생 `김바비`는 학창시절에도 골목상권에 관심이 많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학생이었나요? 제 첫 책 제목이 ‘골목의 전쟁’이어서 그런지 제가 원래부터 골목상권에 관심이 많은 줄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 재미와 흥미로움을 가지고 좋아했을 뿐이고 골목상권은 그런 제 흥미로움의 일부였을 뿐이지요. 제 부모님은 방임형으로 자식을 키우신 편이어서 저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시던 분들이셨는데 그 덕분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많이 했습니다. 책이 그저 재미있고 좋아서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축구하고, 축구게임을 하고. 제 어린 시절은 아마 책을 빼면 제 나이 또래의 다른 남자들과 별다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제대로 읽은 첫 활자 책은 제 나이 또래의 아재들이 그렇듯이 삼국지였습니다. 읽으면서 그 글 속의 이미지를 상상하니까 정말 재미있어서 참을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책을 더 좋아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부모님께서 이혼하시면서부터였어요. 당시 동네 이웃 분들이 저만 보면 안타까운 눈빛을 짓거나 저희 부모님에 대해 수군수군 이야기하곤 했지요. 어떤 분은 ‘네가 나서서 엄마 아빠를 화해시켜야지 뭐 하고 있느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그 모든 게 다 듣기 싫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모든 것은 잊기 위해 독서에 몰두했던 이유도 있었어요. 그 당시 타인과의 대화도 제게는 스트레스였지만, 책은 저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독서 외에 게임도 아주 열심히 했어요. 독서란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게 가장 큽니다. 사람들은 주로 책을 읽을 때 ‘내가 여기서 무언가 인사이트를 얻어야 해! 배워야 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일단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삼국지를 읽고 재미있으니까 초한지를 읽고, 초한지를 읽다 보니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읽고, 그러다 논어도 읽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도 읽고, 흥미에 흥미가 꼬리를 물고 무는 거지요. 또한, 손자병법이 재미있다 보니 동양 전서를 넘어 서양 군서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도 읽게 되고요. 재미있어서 이런 식으로 자꾸 확장되는 겁니다. 그렇게 책과 게임, 그리고 축구만 하면서 보냈던 게 저의 10대였습니다. 공부는 안 했어요.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4년 넘게 방황했는데 그 시기가 비교적 짧았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아는 게 없어서 고민이 없었던 쪽에 가까웠어요. 뭘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몰랐고, 또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습니다. 아는 게 없으니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지요. 당시 상황에선 그걸 고민하는 것도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점수였으니까요. 일단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수능 점수부터 높게 내고 보자’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당시엔 지금과는 입시제도가 달랐고, 수능 비중이 현저히 높았으니 제겐 행운이었어요. 그리고 행운도 잘 따랐습니다. 수능도 그럭저럭 잘 봤으니까요.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제게 진학할 학과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그제야 고민의 순간이 따랐습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흥미나 동기부여는 없었지만, 돈은 벌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무역학과였습니다. 그 당시 제 나름대로는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벌어 먹고사는 나라니 무역을 배우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였어요. 제 주변엔 입시정보 같은 것도 없었고 진로 상담을 제대로 해줄 전문가나 어른도 안 계셨어요. 아마 당시 누군가가 제게 ‘돈 벌려면 공대 가야 해’라고 했다면 공대에 진학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진학한 무역학과였는데 정작 무역은 재미가 없었고,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은 ‘재무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도서관을 가면서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피터 번스타인의 [리스크], [투자 아이디어] 같은 책들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관련 수업을 듣기 위해 찾다 보니 무역학과 말고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의 관련 수업이 많더라고요. 덕분에 무역학과에 몸을 담으면서도 다른 학과의 수업도 무척 많이 수강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국제재무분석사), FRM (Financial Risk Manager:국제재무위험관리사) 등 금융 쪽의 유명한 해외자격증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금융 분야에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재미’를 쫓아 걸어온 시절인 것 같아요. 2012년 10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퇴사를 권하는 사람들은 퇴사를 하면 그 이후에 모든 일이 알아서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영준 작가가 은행을 퇴사하고 간 남미 여행은 로망 중 하나였지만 그 로망의 댓가는 매우 비쌌고 가혹했다. 대학 졸업 후, 국내 굴지의 은행 직원으로 일하다가 2년 만에 돌연 퇴사하고 영업직에 뛰어들게 됩니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대학 졸업 후 IBK 기업은행에 입사했습니다. 사실 이제 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은행은 제가 입사하고 싶었던 최우선순위 직장은 아니었어요. 당시 저희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곤궁을 겪으며 제가 방황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에 저는 ‘내가 지금부터 아버지를 부양해야 한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자’라고 생각했었죠. 당시 제가 입사시험에 합격한 곳 중에선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한 곳이 바로 기업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함정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는데 나라의 경제적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공기업과 은행들 신입사원 연봉을 25%씩 삭감해버렸어요. 저는 가장 돈 많이 주는 곳을 가고자 은행을 선택한 거였는데 웬걸 막상 들어가서 동의하지도 않은 연봉 삭감을 당하니 제가 합격한 곳 중에서 가장 낮은 연봉이 된 겁니다. 제 은행 생활의 가장 큰 불만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은행 일이 맞지 않거나, 힘들었던 것 전혀 아니었어요. 선임들과 상사분들 모두 다 좋은 분이었고, 흔히 있을 법한 직장 내 인간관계로 인한 충돌이나 고민 같은 건 없었어요. 오히려 은행 일은 그럭저럭 잘한 편이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게 벌써 10년 가까이 된 데다 행원 생활만 한 것이 전부기에 은행 일에 어떻다고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실수를 최대한 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어요. 저는 그건 그럭저럭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점에서 담당한 일은 기업 대부와 무역/외환 업무였습니다. 무역학을 별로 안 좋아한 무역학과생이었지만 그래도 배운 가닥이 있어서 어떤 프로세스로 무역서류가 오가는지는 알고 있었고, 해외 송금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문의가 올 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정확하게 설명은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행의 업무시간 내내 몰리는 엄청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견디는 건 제일 중요한 중압감으로 다가왔어요. 대부분 사람은 은행이 영업을 9시부터 4시까지 한다고 해서 직원도 그 시간만 일하는 거로 생각하시는데 그건 전혀 아닙니다. 또한, 대기 손님이 밀려있는데 손님 안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일 안 하는 걸로 보이는 것도 전혀 아니고요. 처리해야 할 서류도 많고, 전화도 엄청나게 밀려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시스템이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경험으론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었어요. 그래도 일 때문에 힘들다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모든 직장생활이 그렇듯 ‘안 힘든 일이 어딨겠거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제가 불만이었던 것은 역시나 연봉이었습니다. 강제로 삭감당했고, 언제 회복될지 기약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정부가 바뀐 이후에야 회복이 될 텐데, 회복된다 쳐도 그 기간에 삭감된 연봉만큼을 소급 적용해서 다시 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하니 차라리 다른 곳에 신입으로 입사해서 연봉을 더 받고 싶었습니다. 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업에 도전도 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민폐가 되지 않게 인사발령 시즌에 맞추어 한 달 전에 퇴사하겠다고 통보를 하고 퇴사를 하였습니다. 여러 금융권 기업에 지원했는데 서류심사는 늘 무난하게 통과했습니다. 다만 면접이 언제나 문제였어요. 당시 저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아요. 제 열의를 보이면 잘 해결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기업은행’이라는 남들 보기에 무척 좋아 보이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것 때문에 ‘부적응자’ 혹은 ‘그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왔으니 우리 회사는 적응 못할 거다’라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붙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 퇴사 사유 중 하나가 강제로 삭감당한 연봉이었지만 면접에서 ‘돈’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금물이기에 이에 대한 사연은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편견은 그렇게 더욱 강화되었고요. 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구직하던 당시에 대형은행에 취직하여 짧지만 그래도 근무 경력이 있으니 퇴사하더라도 무난하게 다른 곳에도 합격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같은 지원자 중에서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도 참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너무 이른 퇴사 결정이 제 커리어 전체를 망친 거였죠. 공백기는 계속 길어지고 나이는 더 먹어가니, 커리어는 사실상 끝난 거였어요. 완전히 망했지요.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불안감과 한숨으로 밤을 보냈었는지… 좌절감도 엄청났어요. 2013년 4월, 보험 영업을 하던 시절. 그에게 보험 영업은 매우 큰 딜레마를 던져준 경험이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어요. 배운 도둑질이 있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이유로 저는 보험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면 적어도 상품설명이나 전문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을 테니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는 매일 10km씩 걸어 다니며 보험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좌절을 참 많이 겪었어요. 한번은 어떤 분이 질병 보험가입을 희망하셨는데, 당시 당사자분의 질병과 이력 등을 고려하면 가입이 어렵거나, 가능하더라도 제약 사항이 엄청나게 걸리고 보험료도 높게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그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굳으면서 화를 내시더라고요. ‘자기가 아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었는데, 그 사람은 다 된다고 하는데 너는 왜 안된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보험료를 비싸게 받으려 하는 수작이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당사자께서 말씀하시는 ‘아는 다른 사람’은 당사자의 병력사항을 은폐하고 보험에 가입시키려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보험에 가입하면 나중에 질병이 발생했을 때 고지 위반으로 보험금 못 받고 계약 해지됩니다.’라고 그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무능하고 보험료 비싼 거 가입시키려는 사기꾼’이라며 욕을 하시더라고요. 아마 보험 영업으로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분들이라면 잘 이해하실 겁니다. 이런 상황을 한두 사람에게서만 겪은 게 아니었기에 참 답답했어요. 그러나 보험 영업을 하며 사람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2007년부터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블로거는 10년 후인 2017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바로 `골목의 전쟁` 출간이 그 시작이었는데요. 필명으로 블로그 활동하시던 와중 본인 명의의 책 출간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종종 ‘김바비’란 필명을 어떻게 지었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2007년에 블로그를 만들면서 ‘필명을 뭐로 할까?’ 고민했는데, 그때 켜둔 라디오에 흘러나오던 게 가수 바비킴의 음악이었어요. 그렇게 제 성의 ‘김’을 붙여서 ‘김바비’라고 한 거죠. 아마 그때 가수 인순이 음악이 나왔으면 ‘김인순’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바비’의 풀네임인 ‘로버트’라고 지을지 고민도 해보았는데, ‘로버트 김’이라는 어감이 로비스트의 이름으로 연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김바비’로 지었어요. 처음 블로그를 만든 목적은 공부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해외금융자격증인 FRM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는데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게 필요했어요. 정리를 할 때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서 쓴다면 ‘그때는 그 지식이 내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하나 포스팅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덕분에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이 제 블로그를 방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당시엔 포스팅 하나를 쓰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경부터입니다. 퇴사하고 시간 여유도 있으니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몇몇 글이 다른 경제 블로거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그 덕분에 제 블로그도 구독자가 늘어났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이런 공유와 확산은 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포스팅이 금방 발견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포스팅을 꾸준하게 몇 년을 써도 그에 걸맞은 구독자가 없기도 합니다. 그 점에서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별도로 맛집과 연어 무한리필 전문점에 대한 포스팅을 비롯해 상권에 관한 포스팅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출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예상치도 못한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책을 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는 책을 쓸 깜냥이나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어요. 책은 저보다 더 경력과 경험이 출중하신 분들이 쓰는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이거 사기 아닌가?’라는 의심도 했어요. 책을 내신 다른 블로거 분들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마음 편하게 먹고 일단 한번 만나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렇게 [골목의 전쟁]의 토대가 되는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책을 집필하는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손에 꼽기가 힘들 정도로 많아요. 처음에 계약했던 출판사가 출판사업을 접는 바람에 잘 쓰고 있던 원고가 붕 떠버리기도 했고요. 아버지가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새로 출판사 구해서 편집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책의 편집일정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던 시점이라 낮과 저녁에는 장례식 오시는 손님들께 인사하고, 새벽에는 원고 수정을 해야 했어요. 이제 와서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마음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자식에게 짐을 안겨주셨던 분이거든요. 제가 멀쩡히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둔 것은 경제적으로나, 생활로나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버지를 챙겨야겠단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계기로 내린 저의 고지식한 선택은 처참한 결과를 맞았고요. 그리고 제 삶에 운명처럼 다가온 기회를 준비하며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시고 세상을 뜨셨어요. 자식으로서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이건 정말 너무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집필 과정이 힘든 게 아니라 그 외적으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참 힘들었어요. 그런 우여곡절을 넘은 끝에 [골목의 전쟁]이 출간 되었습니다. 2017년 출간된 '골목의 전쟁'은 출간 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며 주목 받았고, 2019년 10월 부로 초판 10쇄가 재판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받고 있다. 2017년 출간되었지만 꾸준히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골목의 전쟁`입니다. 무명저자임에도 불구하고 `골목의 전쟁`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은 사실 제가 이번 새 책인 [멀티팩터]에서 마지막에 쓴 내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에필로그 제목이 ‘골목의 전쟁은 어쩌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저는 무명저자임에도 완벽한 무명저자는 아니었습니다. 책을 낼 당시에 저는 당시 블로그 구독자 수 7천 명이 넘었고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친구와 팔로워 포함해서 6천 명이 좀 넘었습니다. 당시 제 블로그를 구독하시는 분 중에선 다른 경제 블로거들도 계셨고, 금융업계 종사자도 계셨고, 언론 등 다양한 비즈니스에 종사하시는 분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본명은 몰라도 ‘김바비’란 이름으로는 알려진 존재였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책을 많이 사서 보고 읽으시는 분들이기도 했고요.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저는 아주 대단한 인플루언서는 아니더라도 이미 작은 인플루언서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골목의 전쟁’이 출간된 시기와 운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제가 원고를 쓰고 발표할 때는 문재인 정부가 막 출범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최저임금 이슈가 아주 불을 뿜었습니다. 최저임금이 첫해에는 16.4%, 그다음 해에는 10.9%가 올랐으니까요. 이런 엄청난 증가세 때문에 자영업에 관한 이슈도 중심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더군다나 각 지역에서 상가의 공실이 가속화되던 시기였고요. 이런 이슈가 지속이 되니 그 두 가지 문제를 같이 다룬 제 책이 주목받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책 발매 시점도 마찬가집니다. 책 내용이야 제가 썼지만 그런 맞물리는 이슈들은 제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어요. 그저 운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바로 이런 여러 요소 덕에 때문에 ‘골목의 전쟁’은 무명작가의 저자가 쓴 책이지만 입소문을 탈 수 있었고 시기와 적절한 이슈가 맞물리면서 책의 수명이 꽤 오래갈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2017년 10월, ㅍㅍㅅㅅ에서 진행한 강연 당시. '골목의 전쟁' 출간 후, 작가 개인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단숨에 유명작가로 떠올랐는데요. 강연, 인터뷰도 많이 하셨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기보다는 당황스러운 게 많았습니다. 저는 제가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무언가 대단한 통찰을 하고 있다고 여겨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선생님’, ‘작가님’ 이렇게 부르니 당황했어요. ‘나는 그런 수준의 인간이 아닌데…’, ‘더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더 훌륭한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있어 보이는 유창한 용어나 유식한 단어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어려운 단어가 많으면 싫증을 느껴요. 두 번 세 번 찾아봐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 단어가 머릿속에 기억이 오랜 남는 것도 아니라서 나중에 또 나오면 다시 또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게 됩니다. 저는 저 자신이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기에 저는 글도 제 수준에 맞게 씁니다. 그렇기에 제가 그나마 잘한다고 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생각이나 견해를 제 나름대로 쉽게 풀어서 전달하지요. 이게 제가 늘 지향하는 바기도 하고, 가장 희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쉽게 읽힌다’, ‘재미있다’라고 하는 것이 제게는 ‘가장 기쁜 칭찬’ 이예요. 지난 2월 4일, 김영준 작가의 신작 [멀티팩터: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이 출간 되었다. 출간 일주일 만에 알라딘 '편집장의 선택', 예스24 '오늘의 책'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 2월 초, 신작 `멀티팩터: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이 출간되었습니다. 아직 신작을 접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 대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할게요. 우선 [멀티팩터]는 성공을 주제로 한 책입니다. 현재 성공에 관한 콘텐츠들은 참 많습니다. 이건 그만큼 사람들이 성공을 원하고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콘텐츠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기업의 공통점을 찾아서 정리한 것이거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성공한 사람의 경험담입니다. 좋은 내용이긴 하나 제가 궁금한 것은 과연 ‘거기서 제안하는 대로 한다 해서 성공하는가’하는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일이 벌어진 시점에서 결과를 보고, 그 과정을 평가하는 경우 결과에 끼워 맞춘 과정을 도출하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공 콘텐츠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지요. 결과에 과정을 끼워 맞추니 진짜가 아니라 그럴싸한 것을 도출해내고 있거든요. 그렇게 성공이 명확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그 방법론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이나 기업 또한 그들의 대단한 성공을 장기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투자에선 단기 성과는 운이라 하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어져야지만 실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단기적 성과를 가지고 성공에 대한 원인을 도출하는 것은 애초에 틀린 것이 아닐까요? 이 때문에 성공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들은 재현 불가능한, 고장 난 비법을 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짐 콜린스의 책들이 대표적이며 그 아류작들도 마찬가지죠. 성공에 대한 잘못된 콘텐츠는 오히려 사람들을 성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 한 치 앞도 모르는 불확실성 앞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확실성은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죠. 실제로 사회는 서로 매우 복잡하게 엮여 있어서 어느 한쪽의 작은 원인이 다른 곳에서 큰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서로 반응과 영향을 복잡하게 미치기에 ‘나의 선택이나 결정이 내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에 저는 제 책을 통해서, ‘불확실성 하에서 선택과 결정을 내리며 성공을 추구하고자 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공한 기업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제 책은 ‘성공에 관한 책’이자 ‘불확실성 하의 전략적인 선택’에 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골목의 전쟁]이 ‘실패’에 대해서 다룬 책이니 이제는 반대로 ‘성공’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골목의 전쟁]의 3장에서 짧게나마 다룬 주제이기도 합니다. 골목 상권과 자영업이란 주제는 이제 전체적인 추세에서 다소 멀어졌으며, 제가 원래 쓰던 글에서 골목 상권과 자영업이란 주제는 일부에 불과했기에 정말로 제가 쓰고 싶었던 내용을 이번에 써보았습니다. 2017년 11월, 인터뷰 당시. 김영준 작가는 행운과 타인의 도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 걸 알기에, "받은 도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공식 질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은 제 새 책인 [멀티팩터]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자기 생각을 전파하고 확산하기 위해서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신간은 성공에 관한 제 생각이 널리 확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더 다양한 담론과 분석들이 비롯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집필할 겁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는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남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생각과 견해를 쉽게 풀어내고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쌓아나가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글을 써낼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응원 덕에 책을 출간되고, 책을 사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행운과 타인의 도움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 점에서 저는 마음의 빚이 참 많습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렇게 끝까지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김영준 작가 블로그] blog.naver.com/breitner [김영준 작가 페이스북] facebook.com/paulbreit [김영준 작가 유튜브] youtube.com/c/김바비노믹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김영준 스마트북스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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