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원장 <김현철> 원장의 인터뷰 1편 [기자수첩] - 기자가 받은 한통의 편지. 나는 AVEC G 발행인이자 수석기자이다. 이번 김현철 원장을 취재하면서 처음으로 인터뷰 과정을 담은 [기자수첩]을 기획하게 되었다. 김현철 원장의 인터뷰 과정은 그 어떤 인터뷰이의 인터뷰 과정보다 특별했다. 그 과정을 1편 [기자수첩] 그리고 [인터뷰]는 2편에 나누어 공개하는 바이다. 우선 AVEC G에 대해 소개하자면 공식 홈페이지는 보다시피 광고가 없다. 외부후원도 없다. 트래픽으로 돈을 버는 시스템도 아니다. 스폰서도 없고, 인터뷰 기사를 위해 어떠한 금전적 혜택도 받지 않는다. 100% 재능기부로 오히려 나의 사비로 홈페이지 제작과 운영을 위해 쓰이는 돈이 많다. 사람들은 내게 `왜 하냐?`라는 질문을 종종 하기도 한다. 나는 `청년들에겐 IMF보다 취업이 힘든 시기이지 않느냐. 최대한 많은 분야에서 청소년, 청년들의 멘토로 그들이 걸어온 길을 소개함으로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라고 한다. 난 참 무거운 마음과 함께 AVEC G를 창간했다. 2019년 5월 AVEC G를 창간하고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 명망, 인품, 지위, 시국 등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가장 적절한 인물을 인터뷰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기사를 읽고, 10년이 훨씬 더 지난 방송을 찾아보는 등 1명의 인터뷰를 섭외하기까지 같은 분야 종사자 100여 명 이상을 꼼꼼히 선별했다. 나는 AVEC G의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가 인터뷰 과정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쌍방의 열정은 시너지를 가져왔고, 심도 깊은 인터뷰가 모인 AVEC G의 인터뷰 기사가 차곡차곡 쌓여가며 AVEC G는 그렇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터뷰 전문 사이트`가 되어가고 있다. 김현철 원장과의 첫 인사는 2019년 6월 말 SNS를 통해 처음 이루어졌다. AVEC G가 창간된 지 한 달 만이었다. 나는 김현철 원장이 부산대신문에 기고한 `부산의 치의학 40년, 그리고 미래`를 읽은 후였다. 나는 김현철 원장에게 인터뷰 의뢰를 했다. 그는 검토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양해를 부탁한다는 답장을 남겼다. 그는 원장직을 맡은 지 3개월 만이었기에 지금보다 훨씬 바빴을 뿐더러 AVEC G 인터뷰 특성상 `현 위치까지 올라온 과정`에 대해 `과거`를 묻는 질문이 많은 만큼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었던 그 시기에 외부 언사를 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8월, 빛나는 성과를 내고 있었던 그에게 다시 한 번 SNS를 통해 연락했다. 그는 나의 의뢰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바쁜 일정에 그는 `다음 시기`를 기약했다. 나는 10월 다시 인터뷰 일정을 물었다. 그 사이 AVEC G는 `인터뷰 전문 언론사`로 시스템은 나름 삐꺽이던게 기름칠 되어 구축된 시기였다. 해외에서 오래 사는 내가 한국 문화에서 `생각해볼게요`, `다음에요`라는 답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김현철 원장이 하는 `다음`, `보류`라는 단어를 쓴 답변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가 `거절`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역시 정말 인터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거절하지 마시고….`, `이번엔 정말 삼고초려가 되겠네요.` 등의 부탁 어린 메세지를 보냈다.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마시고:: 오류입니다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어서요^^`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일정을 소개하며 양해를 구했다. 맞다. 지난 6월도 그렇고 8월도 그렇고. 10월에도. 그는 절대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는 인터뷰 협조 공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12월 중순까지 10분도 쪼깨야 하는 상황이라 12월 중 비행기 안이나 공항에서 답변을 보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답했다. 12월 말이 다가왔고, 나는 `옐로카펫` 창안자인 `옐로소사이어티` 이제복 대표, 배우 이재윤, 유상재, 춘천지방법원 류영재 판사, KB증권 이승종 앵커, 프로볼링 김승민 선수의 인터뷰 원고를 한꺼번에 윤문과 사진 편집과정에 거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리고 그중 유상재 배우와 류영재 판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기사가 2019년 안에 출고되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밤에도, 그리고 31일에서 2020년 1월 1일이 되던 그 순간에도 원고를 첨삭하고 있었다. 김현철 원장은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의 메아리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던 며칠 되지 않아 내게 서면 인터뷰 원고를 보내왔다. 그리고 별도로 편집팀에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며 울었다. 그리고 더 오래 울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업적이나 일에 대한 보상을 금전적인 것으로 받는 것에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겐 `입에 풀칠할`, `지금 당장 필요한`. 하지만 나는 독자의 반응에만 감사하며 `보람`만으로 걸어왔으나 내게 그 어떤 것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현실에 너무 지쳐있던 그때였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금전적인 보상을 원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애초에 AVEC G는 재능기부로 시작한 일이니. 그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 `힘들게 일하는 걸 누가 알아주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나 60여명의 인터뷰 기사를 출고하니 '이제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게 아닌데,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쉬움을 곱씹으며 하루 12번 넘게 AVEC G의 존폐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김현철 원장이 보낸 편지는 결정적으로 내가 AVEC G를 통해 인터뷰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제시했다. 난 김현철 원장과 어떻게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을 하진 못한다. 그리고 우린 공통된 친구도 없다. 난 그 점이 굉장히 의아하다. 그러나 아마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이 우연 또한 신의 뜻이겠지 생각해본다. 약속한다. AVEC G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사회에서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분들을 만나고, 좋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인터뷰어로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AVEC G 인터뷰이의 인터뷰를 기사를 접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꿀 수 있다면, 하늘에 두 손 모아 감사할 것이다. ![]() - 김현철 원장의 편지 전문: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저는 사실 AVEC G를 잘 모르고 (완전히 모르고) 더더군다나 박 기자님도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모릅니다. 우연히 SNS에 포스팅되는 글들을 통해 소신 있게 철학을 지키며 언론인, 준(?)공인으로서의 자세를 다듬어 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웠기에 반복되는 인터뷰 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와 연결고리 혹은 저와 통하는 철학은 Passion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삶이 동물의 생과 다른 것은 열정이 있는가 아닌가로 구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동물은 욕구에 따른 생명유지를 위한 필요에 따른 행동만 하지만, 사람은 철학과 소신이 있어 사회 속의 자아실현과 자아의 희생을 통한 무리 속의 존재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삶, 인생에서 문제가 되는 몇 가지가 “욕심” 혹은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은 어쩌면 동물들도 갖는 본능적인 행동양식이라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만, 동물들이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잇감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을 보면 동물의 욕심은 사람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비교”에서 비롯되는데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의 환경과 가진 것을 탐하는 것이 결국 욕심이고 욕심의 끝은 개인의 행복감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간혹 제자들이 결혼을 즈음하여 예비 배우자와 함께 인사를 올 때면, 제가 축하의 말로 전하는 것이 비교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처가와 본가의 비교 혹은 내 아이와 저 집 아이의 비교,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을 피폐하게 하므로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일 것이라 전해주고 있습니다. AVEC G의 박 기자님도 욕심을 갖지 않았기에 남들과는 다르고 어쩌면 어려운 길을 지켜나가는 언론인으로 자아를 지켜나가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가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직업 정신이 뛰어나다, 남들과 비교하여 뛰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난 존재가 되어 가는 삶을 사는 기자이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직업에 있어 간혹 혹은 자주 사회의 문제나 사람 간의 문제가 되는 것이 “권위”입니다.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에 대해 느끼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스스로 권위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타인이 인정해줄 때 그야말로 권위적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동물에게 권위는 약육강식의 서열을 말하는 것뿐입니다만, 사람에게 권위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간의 예의가 권위라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대학병원 환경미화 여사님과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십여 년 전,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이 독립법인으로 이전 개원을 하고 병원에는 너덧 분의 여사님들이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유지관리를 해 주시게 되었습니다. 보통 9시 진료 전에 8시경에 시작하는 아침, 세미나 일정 등으로 더 이른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세미나를 위해 복도를 걷는 중 이른 시간부터 출근하셔서 청소 업무 중인 여사님께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쳐다보지 않으시고 바닥만 계속 닦으셨습니다. 약간의 무안함이 있었으나, '못 들으셨나 보다' 생각하고 지나쳤습니다. 그 후로도 두세 번 그런 일이 반복되어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은, 제 인사에 주변을 둘러보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시고는 반갑게 인사말을 돌려 주셨습니다. 그제야 생각한 것이, 그 시간대가 환자들이 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 의료진인 교수와 전공의 선생님들이 오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청소하시는 여사님께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지레짐작하시고 묵묵히 하시던 일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는 먼저 시선을 주시기도 하고,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직업의 차이는 있고, 당연히 업무의 난이도가 다릅니다만, 직업의 귀천은 당연히 없어야 하며, 그 직업의 종류에 따라 사람의 존재감이나 권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0여 명의 의사직이 근무하는 병원에 서너 분의 여사님들이 일을 못 하거나 안 하시게 되면, 과연 병원이 제대로 운영이 될까요? 100여 명의 의사 중에 누군가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을 할까요? 의사 서너 분이 안 나오더라도 병원은 잘 운영이 될 것입니다만, 반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업의 귀천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보지 않은 일 등이 존재하는 것이고,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그 사람의 지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상대의 직업을 존중하고 그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는 권위를 갖게 되나, '내가 의사이니 여사님께는 인사를 받아야지, 내가 먼저 하지는 않아도 되려니...' 생각하는 사람은 권위를 얻을 수가 없고, 스스로 주장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에 비교를 하고 욕심을 낼 수 있고 권위를 주장할 수 있지만, 동물의 생이 아닌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한 역할을 잘하여 주장이 아닌 주어진 삶의 권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하며, 지난 50년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생이 아닌 삶을 더욱 가치 있도록 그려 보고자 합니다.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며 독자들께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본편: 바로가기 글: 글렌다 박 발행인 및 수석기자, 김현철 원장 사진 제공: 김현철 원장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1 Comment
이혜정
1/24/2020 09:30:35 am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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