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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한기원>6/4/2019 소년은 어느 날 우연히 Kenny G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음악 뿐 아니라 다른 것 또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으니. 그것은 색소폰이었다. Kenny G의 음악에 반해 색소폰을 들게 된 소년은 이젠 한국의 색소폰계를 이끄는 주류가 되어있다. 그런 색소포니스트 한기원과의 인터뷰이다!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색소폰 연주자 한기원 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처음 접하는데 어떻게 색소폰 전공을 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이겠지만, 실제로 악기를 시작한 것은 7살 때 동네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음악을 기본소양으로 생각하시고 어린 아들을 학원에 보내셨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저는 어려서 도망을 많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도 피아노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배웠는데, 콩쿠르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입상했었습니다. 다만 의미를 모르고 배우던 것이라 그런지 흥미를 잃어 더 이어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인 Kenny G를 통해서였습니다. KBS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연예가중계’라는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었는데요. 당시 방송에서는 마지막에 항상 외국 뮤직비디오가 한 편씩 나오곤 했었습니다. Kenny G가 영화 'Dying Young'의 OST를 연주하던 모습을 잠깐 이었지만, 너무나도 인상 깊게 보게 되었고 그 이후 동네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Kenny G 음반을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는데,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Kenny G 음반을 전집으로 모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었습니다. 음반과 콘서트 레이저 디스크를 한 장 한 장 구매해 가면서 너무나도 훌륭한 Kenny G의 연주에 매료되어 점점 깊은 감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Dying Young OST “Theme From Dying Young” by Kenny G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같은 반 친구의 삼촌께서 색소폰을 연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머니를 설득해 취미로 그분께 색소폰 개인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던 분은 아마추어 연주자였는데, 교습을 3개월 정도 하시더니 본인이 가르쳐본 사람 중에 제가 가장 배우는 것이 빠르다며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제 어머니께 아들이 전공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는 워낙 하고 싶었던 악기를 하면서 좋은 평가를 듣게 되니 너무 기분이 좋아서 색소폰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공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보수적인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만 하고 유순하게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살아왔던 아들인 제가 6개월 가까이 색소폰을 전공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니 결국엔 ‘네가 그 정도 의지가 있다면 뭘 해도 안 되겠느냐?’며 아버지께서도 허락을 해주셨고, 결국 색소폰으로 진로를 돌려 전공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받으면서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제가 결정한 길이니 선생님을 알아보고 진로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은 제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저는 낙원동의 악기 상가에 가서 스스로 악기를 구매하고 선생님의 정보를 얻어서 서울시향 바순 주자이면서 색소폰 연주도 하시는 최중원 선생님을 뵙게 되고 전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고등학교 1학년 5월이었습니다. 저는 아는 지인들은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은 없었고 막연한 응원을 많이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때 주위에 음악을 하시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었다면, 제가 공부를 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별다른 생각 없이 연습에만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모범생 스타일이고 선생님이 뭔가를 가르쳐주시면 될 때까지 반복연습 하는 스타일이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특별히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색소폰의 매력은 사실 제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더라도 많은 분이 이미 공감하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색소폰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은 아마도 ‘소리’ 때문에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전문가 측면에서 본 장점이라면 색소폰은 많은 악기 중에 배우기에 가장 쉬운 편이고 연주의 장르 면에서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한국에서는 색소폰이 아주 인기 있는 악기로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학교 졸업 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색소폰 전공자를 처음으로 뽑기 시작한 것은 94년도부터였고 제가 입학한 것은 99년도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저는 학교에 정원이 딱 1명인 색소폰파트에 현역으로 합격한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우쭐해져서 잠시 일종의 자만심에 취했었습니다.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기들의 연주 실력을 보게 되었는데, 다른 악기를 하는 제 관악과 동기들은 당시에 모두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제가 속해있는 목관전공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악기를 시작해서 예원학교-서울예고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친구들이었고 고1 때 시작해서 3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음대에 들어온 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하나같이 실력이 훌륭했습니다. 저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좋은 교육밖에는 없을 거란 판단하에 과감하게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린 뒤 클래식 색소폰의 종주국인 프랑스로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당시엔 어렸기 때문에 유학 생활에 대해 무섭거나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고, 제가 유학 떠나기 전부터 계획한 대로 어학을 준비하면서 파리에 있는 색소폰의 대가들을 찾아뵙고 개인지도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제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세계적인 연주자인 동시에 훌륭한 교육자였기 때문에 저로서는 너무나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1년 정도만 어학연수를 하면서 색소폰 교습을 받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파리음악원 입학시험을 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합격을 하게 되어 더 머무르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클래식 음악계의 후배들이 유학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 첫째는 무엇일까요? 색소폰은 아직 연주자 선배가 많지 않은 악기라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특성상 아마 대학생 정도 되는 후배들은 미래에 본인이 어떤 연주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단순히 유학을 ‘색소폰을 좀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간다’라는 생각보다는 본인이 ‘무엇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비롯해 ‘좋은 음악을 위해서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배움의 방향을 정할 것인가?’ 등을 충분히 고민한 후에 유학을 떠나는 것을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후배들이 ‘음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되지 않으면 계속해나갈 수가 없다’라는 점을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프랑스의 유학 생활을 비교했을 때 어떠한 장, 단점이 있었나요? 한국의 음악교육은 개인을 빛나게 해주는 점에서 아주 강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를 많이 배출한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프랑스를 포함해서 소위 음악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함께하는 것’이 목적인 음악의 특성을 더 잘 살려서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음악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나’와 ‘너’, 또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제가 보기에 오케스트라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확장해 보면 드넓은 우주의 놀라운 신비를 단 50명의 등장인물로 표현하기에 음악처럼 좋은 방법도 없을 거라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견은 저의 개인 소견일 뿐이지만, 서양에서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는 음악의 의미를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장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클래식은 서양음악이기 때문에 당연히 종주국들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고, 또한 즐기는 데도 많은 비결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이해하고 선진국의 장점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악기별 교육프로그램과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시행착오는 건너뛰는 식으로 발전시키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연주도 많지만, 실내악에 큰 비중을 두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눈에 띄는 건 단연 '조아 색소폰 콰르텟'의 악장으로 활동하시고 계신 것인데요. 소개 부탁드릴게요. 클래식 음악에서 보통 4~10명 정도의 기악을 중심으로 한 음악을 ‘실내악’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성부가 다른 색소폰 4대(성악 성부와 같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의 형태로 ‘조아 색소폰 콰르텟’이라는 팀에서 악장 겸 음악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콰르텟이란 4명의 연주자가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조아 색소폰 콰르텟은’ 저의 제안으로 2015년 8월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색소폰을 통해 클래식의 모습을 대중들께 보여드리기 위한 4명의 마음이 한데 모여 지금까지 팀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조아’라는 이름은 우리 말 '좋아'와 프랑스어 'Joie'가 어우러진 단체명입니다. 프랑스어의 Joie는 사전적 의미로 1. 기쁨, 환희 2, 지겨움, 고통 3. 관능, 쾌락 등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음악을 통해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자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소프라노 색소폰 한기원, 알토 색소폰 이재영, 테너 색소폰 장호진, 바리톤 색소폰 이준호. 이렇게 4명입니다. 저희 팀은 보통 연주가 없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주가 있는 경우는 완성도를 위해 더 자주 만나서 연습하고요. 한번 만나면 2시간씩 연습합니다. 저희 팀 연습의 목표는 보통 제가 제시를 많이 하는 편인데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기술 향상과 관객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를 발굴해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수많은 무대에 올라가면서 만난 관객 중 기억에 남는 특별한 팬이 있나요? 제가 2008년도에 경북 칠곡군 왜관수도원이라는 곳에서 오르간과 색소폰의 듀오로 연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관객분들과 인사를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었는데요. 어떤 여성분이 저에게 ‘음악 하시는 분들은 본인이 어떤 일 하시는지 잘 모르시죠?’ ‘정말 감사히 잘 들었어요’ 하며 웃으면서 인사하고 가셨는데 이때 제 머리가 ‘띵’ 하고 종소리처럼 울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식의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거니와 제가 하는 연주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의미일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연주준비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욱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연주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또한 신체적인 상태를 최대한 좋게 유지하고, 악기 상태를 점검하고 제가 가진 리드를 모두 연주해 보고 가장 좋은 리드로 연주에 임합니다. 어찌 보면 음악가에겐 당연한 준비인데 ‘최선을 다하고 있나?’라고 스스로 자문할 때 아직도 항상 그분의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연주하면서 자신에게 한계를 느끼는 때가 있나요? 그럴 때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제가 준비한 만큼의 결과가 무대에서 증명되는 것이기에 어떤 시기를 슬럼프라고 느낀 적은 없고 준비가 미흡한 연주들은 기억에 남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한계는 매 순간 느낍니다. 솔직히 인간이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마지막 순간이 있기에 매 순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고, 영원히 사는 신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한다’라는 말처럼 제가 완벽하지 않기에 노력이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완벽한 연주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극복할 방법은 없기에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연습할 때 스트레스 엄청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연주를 하면서는 스트레스보다는 기쁨을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제게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입니다. 연습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풉니다. 현 한국 클래식계는 K-POP이나 다른 장르에 비교해 마켓파워가 지고있는 태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 전공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클래식 전공자의 숫자가 주는 것은 인구 감소로 인한 당연한 순서를 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든 예전보다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한국에서 음악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음악가의 숫자를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켓파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저는 질문에 상술된 바와 생각이 다릅니다. 제 시선에서 대한민국에서 클래식의 인기는 오히려 상승세라고 보입니다. 저는 오히려 과거에 오늘날처럼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클래식의 시장이 보잘것없고 퇴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도 과거보다는 나아진 것이란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악 전공을 안 하신 분들은 클래식 공연에서 객석에 자리가 얼마나 차 있느냐로 연주회의 흥행을 판단하실 수가 있는데, 이는 초대권에 의해서 채워지는 눈속임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져서 많은 분이 당연히 표를 구매해서 보러 갑니다. 그리고 점점 클래식 공연장을 찾은 팬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음악가에게 질문 하셔도 비슷한 대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아직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클래식 공연이 잘 없고 만들어 내기가 힘든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양문물을 많이 받아들인 한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만약 모든 사람이 음악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한다면 초중고 의무교육 수준에서부터 음악교육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교과목이 아닙니다. 활동의 영역입니다. 체육을 책으로만 공부할 수 없듯이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서 개인적으로 악기를 1가지 이상은 다룰 수 있게 하고 그를 통해서 오케스트라, 윈드 앙상블, 재즈 밴드, 합창단 등의 음악 활동들을 통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합니다. 수학만을 공부한 학생들보다 악보를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활동을 병행한 학생들이 수학과 관련한 뇌의 발달이 더 빠르다는 것은 이미 연구로서 입증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언어능력을 제외하고 오감 중에 청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음악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해서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음악회를 보는 것을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한 수단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저는 이런 변화가 어린아이들에게서부터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보라고 하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사람이 즐기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특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과연 국·영·수와 같은 교과목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 음악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무엇이 우리에게 이로운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한 번쯤은 있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한국에서는 음악과 함께한다는 것을 유흥의 한 종류 정도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이 서양의 문물 중 많은 장점을 받아들여서 빠른 발전을 이룩해 왔는데 음악에 대한 인식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서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사실 한국에서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연주자로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무대에서 여러분들과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저의 연주가 관객들께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지 제가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음악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음악가로서 인사드리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께 진정한 음악가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한기원 영상 제공: KennyGVovo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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