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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티발레단 단장 <박태희>5/27/2019 발레를 좋아하고, 발레를 사랑해서, 발레를 바라보며 30년의 세월을 달려온 발레리노. 그의 자녀인 박민아 양도 DNA를 물려받아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도약하고 있다. 인천시티발레단의 단장이자 예술감독, 박태희와의 인터뷰!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천시티발레단 단장, 박태희입니다. 1980년 후반, 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남자 발레 무용수의 인식이 자리 잡혀 있지 않아서 발레를 전공하기가 녹록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발레를 전공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17세,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을 했습니다. 의외로 당시 사회적인 편견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발레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20대 때 국립발레단 시절에 가르쳤던 학생 전소연의 어머니가 저희 발레 인생이 있어 전환점을 가지게 해 주신 분이 십니다. 이유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발레단 이후 직업 전환에 있어 저에게 많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발레를 배우면서 좋았던 시기는 국립발레단 시절입니다. 그 시절은 제가 많은 가르침과 숙제와 공부를 많이 한 시절입니다. 세계적인 안무가이자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 유리 그리가로비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호두까기인형)를 비롯하여 몬테카를로발레단 안무 가장인 크리스토 마이오(로미오 앤 줄리엣), 볼쇼이발레단 안무가 콘트라체바 돈키호테 그 외 많은 안무가와 땀을 흘리고 그곳에서 열정과 온 힘을 기울인 그 시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무용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그 시절도 역시 발레를 배우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처럼 국립발레단 시절인 1993년~1998년 10월까지 6년 동안입니다 국립발레단 신입 단원으로써 많은 공연 작품과 병력문제로 동아 무용 무용콩쿠르/한국무용협회 신인 무용콩쿠르 일 년에 두 번만 있는 콩쿠르 결과를 위해서 낯에 국립발레단에서 연습실 공연 작품을 연습하고 저녁에는 콩쿠르 연습을 병행하면서 하루에 10시간을 정도를 강도 높게 연습했습니다. 연습에 연습 만을 지독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콩쿠르 결과 동아무용콩쿠르 93년 은상, 95년 동상, 96년 은상, 그리고 한국무용협회 신인 무용콩쿠르에서 94년 수석상, 97년 수석상, 드디어 98년 특상(1위)으로 군 면제를 받았습니다. 1994년~04년간 국립중앙극장/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등 발레리노 박태희로서 최고의 시기를 보내다가 은퇴하고 갑자기 새로운 경력을 구축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장 생활을 10년만 하고 그 이후는 국립발레단 시절의 경험으로 새로운 너의 세상을 만들라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립발레단 재직 12년 4월 동안 직장 생활했습니다. 현재는 전국에서 14개 지방 단체 시티발레단 협동조합 2019코리아시티발레단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2003년 창단되어 2017년에 전문예술법인단체로 지정되고 현재 인천문화재단 후원으로 6년 차로 부평아트센터에 창작 공연 및 상주단체로 현재 공연하고 있습니다. 지난 16년간 무용수가 아닌 행정가로서 가장 좋고, 힘들었던 점을 설명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호기심이 많아 처음 하는 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서 일벌레 또는 일 중독자라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도 좋아해서 그 사람 푹 파여 그 사람을 알고 나서 그다음부터 그 사람 이 뭐를 잘하는지 파악하고 그 일 맞춰서 일을 시작합니다. 저는 일에 있어 사람이 우선이고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해사는 일 다반사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점 없습니다. 제가 낙천주의자라 일을 하다가 아니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행정가로서 역량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현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6월 3일 발표합니다. 이걸 읽고 계실 독자분들의 기도 부탁드립니다. 인천시티발레단이 2003년 창단과 동시에 대표 겸 예술감독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공연 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2012년에서 2015년, 그리고 2015년에서 2017년까지 연달아 한국문화예술연합회 우수공연 레퍼토리로 선정된 뮤지컬 발레 '신데렐라'와 '빨간모자'의 연출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뮤지컬 발레 '호두까기인형', '신데렐라', '빨간모자', '미녀와 야수', '성냥팔이 소녀' 등을 연출 및 안무를 맡으셨습니다. 발레가 가지고 있는 평면적인 공연 예술로써는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감정 표현에 있어 춤과 보컬이 더 한다면 보는 감동이 배가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발레에서 한 장을 뮤지컬 발레에서는 노래 한 곡으로 대신 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출이나 안무 때문에 기억 남는 해프닝은, '미녀와 야수'에서 첫 등장 신부분에서 노래를 먼저 시작할지, 춤을 시작할지, 그 시작점 연출 때문에 무려 보름 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자녀인 박민아 (여, 14세)도 2015년 일본 도요타 국제발레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하여 2016년 한국 발레협회 콩쿠르 은상, 2017년 코리아 국제스칼러십 콩쿠르 금상, 2018년 코리아 국제발레 아카데미 콩쿠르 대상, 2018년 독일 베를린 국제 무용콩쿠르 1위 (부상으로 영국 로열 발레학교 18/19 여름 인턴십 장학금 수혜) 그리고 올해 일본 TWBT 도쿄 전체 그랑프리 수상은 물론 2018년 스위스 정도영 장학재단 발탁, 2019년 네덜란드 국립 발레학교,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미국 오레곤 발레학교, 호주 퀸즐랜드 발레학교 장학생,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발레학교 장학생으로 발탁되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발레리나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민아는 처음에 4살 때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전공으로 전환했습니다. 6학년 때에 민아가 호두까기 인형에서 클라라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 배역에 집중하고 연기를 하는 모습과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전공을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발레를 하는 것을 반대한 적은 없습니다. 민아가 발레를 통해서 친구들과 소통 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를 위해서 발레를 시켰습니다. 나와 발레를 통해서 같은 시각과 느낌을 공감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아버지로서 민아에게 저는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가 없다’라는 말을 제일 자주 하고 민아는 제일 듣기 싫어합니다. (하하) 딸이 가진 재능은 연기력과 기교로 그 부분은 누구보다 강점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은 서정적인 부분이 약합니다. 아버지 전에 발레리노의 길을 걸었었던 선배의 관점으로서 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발레를 하면서 부상이 없었으면 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제 걱정을 덜 듯 언제나 클래스 1시간 전에 와서 몸을 푸는 딸아이의 모습은 항상 듬직합니다. 박민아양은 2019년 무려 다섯 곳의 발레학교에서 입학제의를 받았음에도 그중 한 곳이 아닌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존 크랑코 발레학교 진학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유가 다름 아닌 '현대무용 수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아 양이 발레리나가 아닌 모던댄서가 되길 원하는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유럽 발레단에서 클래식 발레작품과 현대발레작품이 함께 올려지고 있습니다. 무용수라면 어떤 역할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민아가 어느 발레단에 가든지 스스로 성장하며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한 춤을 췄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천시티발레단의 대표 겸 예술감독으로 바른 자세 교정, 신체 균형 발달을 위해 발레 기본동작 등을 소개하는 '인천시민의 건강 프로젝트'를 무료로 한 달간 개강하여 직접 강사로 나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셨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올해로 9년 가까이 인천시티발레단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발레단 대표로써 인천시민들에게 발레의 향후 밑 그들에게 예술교육을 통해서 신체적 균형과 심신을 쉬어갈 수 있다면 앞으로도 이 사업은 계속 무료로 진행할 것입니다. 은퇴 후에는 중앙대, 단국대 등에서 교수로 지내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셨고,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립 발레단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부임하고 계십니다. 후배들에게 무용수로서 강조하고 싶은 소양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직 누구한테 조언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로서 여기까지 올 때 여기가 나의 놀이터고, 내가 제일 좋아하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굳이 조언하자면 자기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습니다. 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인천시티발레단의 활동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동아시아 국제 무용협회를 통해서 우리 발레단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도쿄에서 또는 상하이에서 올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지켜봐 주세요.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박태희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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