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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페터 <유재우>7/31/2019 경기도 연천이라는 시골에서 트럼펫을 배우며, 서울대 음악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하고, '클래식 전공자는 유학이 필수'라는 불문율을 깬 순수한 국내파. 학벌이 클래식 음악 사회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뛰어넘어, 현재 연주자로서 자신의 활동을 한정 시키지 않고, 강의, 지휘, 작,편곡, 행정, 그리고 포토그래퍼로서의 활동까지 하며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그리고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소중하게 쓰고 있는, 트럼페터 유재우와 인터뷰를 나누어보았다.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연천군 출신으로 현지에서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는 트럼펫 연주자 유재우입니다. ‘Avec G’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트럼펫이라는 악기가 일반적으로 접하기 쉬운 악기가 아닌데, 어떤 과정으로 입문하게 되었는지, 어떠한 성장기를 겪어왔는지 궁금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소재 연천노곡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당시 전교생이 80명 정도로 작은 규모의 학교였지만 전국 마칭 밴드 경연대회에 출전해서 해마다 입상했을 정도로 전통 있는 학교입니다. 3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관악부 활동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관악부 활동을 하면서 처음 트럼펫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악기에 배정되었지만 몽글몽글하면서도 밝으며 진취적인 소리를 가진 트럼펫을 연주하는 선배님들이 아주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지나지 않아 트럼펫 파트로 바꾸게 되었고요, 트럼펫을 시작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악기를 처음 잡았을 때의 마음속 설렘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당시엔, 악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재능은 또래 친구들보다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트럼펫에 대한 의욕이 너무 앞서서 그랬는지, 친구들 실력보다 늘 뒤처져 있었고, 그저 친구들처럼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항상 저음 파트를 연주했었는데, 빛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트럼펫 연주 하는 일이 제일 신나는 일이었고요. 주말마다 학교에서 악기를 빌려와서 연습할 정도로, 트럼펫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습니다. 관악부 활동을 하면서 위기가 한 번 있었어요. 초등학생들 사이였지만, 관악부 규율이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가뜩이나 소심한 제가 이겨내기에는 너무 가혹해서, 어머니께 관악부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것도 극복하지 못하면 더 큰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어머니의 질책에 대한 원망이 많았지만,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아니셨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한 백학중학교 시절에도, 관악부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고등학교 때는 안타깝게도 관악부가 없었어요. 음악 선생님(당시 전곡고등학교 음악부장 서성곤 선생님)을 찾아뵙고 트럼펫을 전공하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더니, 선생님께서 저의 열정을 보시고 다방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언제든 연습할 수 있도록 음악실 열쇠도 내어주시고, 부모님처럼 대해주시며, 제게 정말 많이 헌신해주셨어요. 당시에 제게 악기가 없었는데, 선생님이 갖고 계시던 트럼펫도 제게 물려주셨고, 음악실에서 연습하다가 버스를 놓치면, 그 늦은 시간에 집까지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선생님께서 운전해서 데려다주신 적도 많았고요. 대회에 출전할 때는, 새벽같이 우리 집을 방문하셔서, 직접 지방에 데리고 다녀오실 정도로, 선생님께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에는 관악부가 없어서 연주력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서울에 있는 아마추어 연주단체에 가입해서 음악 활동을 계속했었습니다.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매주 출석하는 저를 갸륵하게 보셨는지,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개인지도를 받으라며 선생님을 추천해주셨어요. 그때 저는 제 음악인생의 은인인 스승님을 소개받게 되는데, 그분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최고의 트럼페터 중의 한 분이신 안희찬 선생님이십니다. 그때가 제가 18살 되던 해였어요. 안희찬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절 보시는 눈매가 굉장히 위엄 있으셨는데, 저를 여러모로 연구하시며, 유쾌하게, 그리고 정말 재밌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전공을 하기에는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걱정도 많이 해주셨어요. 처음 악기에 입문했던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선생님 만나 뵙기 전인 고등학교 때까지, 트럼펫을 독학해왔기 때문에, 기본기가 부족함은 물론이고, 잘못된 습관도 많았어요. 오른손잡이가 당장 왼손잡이가 되어야 하는 것만큼, 악기 습관을 바꾸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정신적 고생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고요. 안희찬 선생님께서는 제게 조그마한 발전의 기미만 보여도, 그 부분을 크게 여겨주시고, 칭찬을 많이 해 주시면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선생님 문하생 중 가장 부족한 학생이었는데도, 실력보다는, 제가 트럼펫을 향해 열망하는 꿈과 열정을 높게 사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고자 애쓰셨어요. ‘트럼펫 연주자는 위축되면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요. 덕분에, 대회에 나가거나, 입시 때마다, 온전히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자신있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트럼펫 연주자 역시 마음가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대에서 위축되면, 악기 시작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소리가 나는 악기가 바로 트럼펫이에요. 저는 그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진은준 선생님을, 대학원에서는 강석진 선생님을 사사하였습니다. 두 스승님께 갖는 감사함과 추억도 많습니다. 학부 시절, 진은준 선생님과의 첫 수업이 생각나는데요. 제가 겉모습과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데, 그 때문에 긴장이 심했던 탓인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악기가 잘 불리지 않는 거예요.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시울까지 붉어졌는데, 그 모습을 보시고, 절 한껏 안아주셨습니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신 선생님이시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대학원 1학년 때까지 진은준 선생님께 배웠는데, 당시 집안도 갑자기 어려워지고,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자꾸 생겨서, 공황장애도 생기고, 심한 방황을 했습니다. 악기도 잘 불리지 않고, 학업 생활도 충실하지 못해, 선생님께 F 학점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당시엔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 자신을 성찰하고 보니, 그 학점을 주신 선생님께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학점을 받았더라면 아마 평생 정신 차리지 못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많은 걸 깨닫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오히려 내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마음 한편에 제 자리를 비우고 기다리고 계셨더라고요. 정말 반갑고 또 감사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원에 복학해서, 진은준 선생님 후임으로 부임하신 강석진 선생님을 사사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많은 기술적 아이디어와 악기와 음악을 대하는 좋은 의식을 심어주셨어요. 선생님께서는 다소 젊은 연세이신데, 제 나잇대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많은 부분을 빠르게 공감하시고, 같이 고민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감사한 선생님 덕분에 대학원 졸업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클래식 음악이 서양에서 파생된 만큼 북미, 유럽 등 현지의 교수님과 학교에서 수학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학하지 않고 한국에서 학사와 전문사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유학을 다녀오면 좋죠. 트럼펫은 서양 악기니까요. 견문을 더욱 넓힐 수도 있고요. 낯선 타지에서 수년간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이겨내는 과정을 겪는 것 자체가 위대한 수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학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건 때문이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론, 저보다 더 힘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음악을 배우고, 연주활동을 해나가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전 과거가 너무 힘들었기에, 지금 돌아보면, 제 처지에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저의 경험에 의하면 유학파든 국내파든 기회는 누구에게나 늘 공정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잘해낼 수 있는 실력과 열정, 바른 인성 등을 갖추고 있으면,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펫이야말로 끊임없는 유지와 보수, 계발해야 하는 분야로써 덧없는 예술 분야입니다. 추상적인 분야가 아니며, 인과관계가 뚜렷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사람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인정받는 공정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연습에 있어 성실해야 함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함’은 흔하디흔한 말이자,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생활에서 적용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엉뚱한 표현일 수 있지만, 저는 연습실로 ‘유학 간다’라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연습실에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악기와 사투를 벌이고 귀가하는 게 일상입니다. 연습실에 갈 시간이 없으면 귀가해서 차 안에서라도 못다 한 연습을 합니다. 연습할 때, 당장 며칠 안에 협연이나 중요한 연주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임하면, 한 시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으며, 도태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그렇듯, 악기와 음악 역시, ‘교만’에 빠지는 순간 쌓아놓은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과거, 선생님께서 제게 ‘자신감은 자만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악기와 음악을 사랑하느냐’, ‘무엇을 위해 연습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좋든, 그렇지 못하든, 모든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입니다. 절대로 다른 핑계, 예를 들어, 저처럼 ‘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이 아닌, ‘성숙’에 애를 쓰고 있는 이유, 어제의 저 자신과 비교하며, ‘어제보다 열심히 하는 오늘을 보내려고 애썼는지’, 또한, ‘사람 되고자 애썼는지’, 저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은 없었는지' 등. 늘 저 자신에게 질문하고, 성찰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해외의 어느 학교에서 얼마나 오래 유학한 것보다, 제가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분들입니다. `트럼페터 유재우`하면 수많은 공연 중 단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연주회가 떠오릅니다. 트럼페터에게 난곡으로 꼽히는 이 곡으로 수차례 무대에 오르셨고, 연주마다 굉장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본인에게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은 어떤 의미인가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총 여섯 곡으로, 1721년 쾨텐 궁정의 카펠마이스터로 있던 바흐가 자신의 협주곡 중 여섯 곡을 모아 크리스티앙 루트비히 브란덴부르크 공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그 여섯 곡 중, 2번 작품에 트럼펫이 등장하는데요, 연주 내내 말도 안 되는 고음이 등장해서 많은 트럼펫 연주자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트럼펫 연주자를 섭외하지 못해 클라리넷, 호른, 심지어 색소폰 등 다른 악기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입니다. 바흐가 활동하던 바로크 시절 트럼펫은 배음 체계로, 구현된 음정만 소리 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음정들을 내려면 배음 간격이 좁은 고음역으로 가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현대에 접어들며, 바로크 음악 고음을 연주하기 위해 ‘피콜로 트럼펫’이라는 소형 악기가 고안이 되었는데요. 피콜로 트럼펫의 탄생에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연주 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트럼펫은 Bb, C, Eb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저는 독주회 때, 피콜로 트럼펫 레퍼토리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이 악기를 좋아합니다. 2015년 봄, 동료의 추천으로 서울 성동구 옥수동 루터교회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첫 연주를 했고요. 2017년에는 춘천시립교향악단과 2018년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그리고 코리안체임버오케스트라(구 서울바로크합주단)와 이 곡을 함께 연주했습니다. 곡 자체가 워낙 힘들어서 그런지, 트럼펫 연주자로 섭외되고, 결정되는 과정에서부터, 연주회가 진행되는 과정이, 때로는 굉장히 매우 급하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공연 하루 전날, 연주자 교체로 인하여 제가 긴급 섭외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모든 연주회가 제게는 정말 큰 도전이었고, 또한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연주회가 끝나면 유연성을 잃게 되어서 그것을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 과정도 하나의 수양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트럼페터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또한,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음악가로서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면? 저의 신조는, ‘사람이 되자’와 ‘항상 감사하자’입니다. 트럼펫에는 ‘희망’과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트럼펫은 직업이기 전에,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제 평생 눈물, 땀, 기쁨, 슬픔, 좌절, 환희 등 그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겪은 더 없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와 함께 무대를 꾸미고, 트럼펫 연주를 통해 관객분들의 마음에, ‘희망과 치유’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자 기쁨입니다. 저 자신과 더불어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성실한 연습’을 해야 함은 기본이고요. 특히 ‘사람됨’과 ‘감사함’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하며, 저 또한 언제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함’을 매사에 찾고,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음악가이기 전에, ‘바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맑고, 바른 정신으로 연습하고, 연주해야, 관객들의 마음에 그 정성이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금물’입니다.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면, 악기 소리와 전체적인 음악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이 ‘숭고한 음악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강의, 연주활동, 지휘자, 작/편곡, 사단법인 음악 단체 회장 겸 이사로서의 행정업무, 본인의 앙상블 팀인 브라스시티의 리더, 심지어 사진작가로서의 활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트럼펫 연주가 본업이고요. 따라서 연습과 연주 활동에 방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맡은 직분에 따른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계획을 잘 세워서 시간을 배분하고, 부지런히 생활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한 일입니다. 피아노나 현악기,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연습해도 시간이 모자랄 수 있는 악기들입니다만, 금관악기는 그렇게 많이 연습하면 몸이 혹사당하여, 오히려 연주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연습한 시간 이상만큼 필요합니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공부와 일들을 합니다. 음악 안에서도 연주자 이상의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트럼펫에 접목할 수 있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데, 제게 주어진 모든 활동을, 귀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맺게 되는 인연들은 언제나 소중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독 지휘를 할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현재 <서울아카데믹윈드앙상블>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고요. <행복한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연주자 겸 부지휘자 직책도 맡고 있으며, 수원시에 있는 <영통구청소년오케스트라>와 성남시에 있는 <분당청소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휘자는 깊은 통솔력과 통찰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하는 직책입니다. 그래야 그 단체가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성원 모두와 음악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다 함께 성장하는 방법들을 항상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편곡자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작곡과 편곡은 오래전부터 늘 관심이 많은 분야였으며, 특히 편곡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본인이 직접 만든 작품을 연주하고 싶어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실제로 본인이 작곡하거나 편곡한 작품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많습니다. 작곡가, 편곡자의 대부분은 수요가 많은 편성의 작품을 주로 만들어냅니다. 가령, 서점에 가면 일반인들이 많이 다루는 색소폰이나 플루트의 악보는 많은데,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트럼펫 악보 칸은 거의 텅텅 비어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심지어 색소폰이나 플루트 악보를 그저 트럼펫 조표로 옮겨서 출판한, 말도 안 되는 악보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계기로 작곡과 편곡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때로는 제 연주회에 제가 만든 작품을 연주해 본 적도 많았습니다. 제 열정을 알아주시는 분들의 추천으로, 인천시립교향악단, 성남시립교향악단, (사)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의 교향악단 및 앙상블 단체의 객원 편곡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4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나오는 악보 제작과 편집 업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분당에 있는 가나안 교회에서 편곡자로 일하고 있고요.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편곡을 의뢰해주셔서, 지금도 오케스트라나 앙상블 구성의 작품, 솔로 레퍼토리 등 많은 클래식 및 대중음악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들이 많이 모이게 된다면, 추후 정식 작품집 출간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사진을 찍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아직 사진작가라고 칭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요. 제가 총무 겸 트럼펫 연주자로 있는 팬아시아필하모니아(Pan Asia Philharmonia) 연주회가 열리면, 연주 업무와 더불어 연주회 사진을 촬영해서 기록을 남기는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원분들의 연주 모습을 촬영하다 보니, 사람들과 색다른 소통을 할 수 있는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장면들도 너무 신기했고, 사진을 보정하면서 얻는 성취감도 상당했고요. 사진기를 갖고 다니다 보니,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같이 큰 연주 장소에 촬영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한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사진 분야에 대해서도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즐길 계획입니다. 올해의 목표는, 어릴 적 고향에서 봤던 밤하늘의 장대한 은하수를 사진으로 담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나요?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제 장인어른께서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계시는데요. 언젠가 장인어른께서 근무하시는 병원에 찾아뵌 적이 있는데, 병원 로비에 들어섰더니, 직접 로비에 나오셔서 따뜻하신 눈빛과 어조로 대기 환자분들 상담도 해주시고, 고민을 들어주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거룩하시던지, 한참을 병원 로비에 서서 장인어른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따뜻하시고, 마음 넓으신 장인어른의 모습이, 환자분들께는 몸이 아파 약해진 그분들의 마음에, 어쩌면 ‘희망을 가져다주는 천사’로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제가 하는 일을 통해,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가치 있고, 정의롭게 살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봤던 시간이었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환갑을 한참 넘기셨는데, 지금도 시간을 내셔서 끝없이 공부하시고, 깨닫고자 하십니다.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저의 소신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고,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자 노력하며,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돕고 함께 하다 보면, 제가 목표하는 ‘정의로운 음악가’, 사람을 살리는 ‘슈바이처 같은 음악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단기적인 계획과 장기적인 계획이 있습니다. 당장은 청소년 교향악단과의 협연 일정 등 중요한 연주들이 예정에 있습니다. 가을에는 중국 원저우 대학교에서 초청 독주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해외연주’라는 특별한 일정이어서, 굉장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 금관 앙상블 연주회, 지휘 및 편곡 일정 등 연말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일정을 건강하게 잘 소화해야 합니다. 최근 저의 신상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요. 지난주에 제가 저의 아내와 함께 10년 정도 활동하던 사단법인 CMAK음악인협회(이사장 피아니스트 정혜경)의 총회에서 회장 겸 이사로 선출되었습니다. 그간 협회를 이끌어 오신 이사장님과 여러 선생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서 협회를 짊어지고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 음악인의 참여와 동행, 협력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요, 또한 인재 발굴 및 육성사업 등 여러 가지의 업무를 추진해나가야 하는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의 다양한 활동들이 앞으로도 한국 음악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며, 무엇보다도 트럼펫으로 많은 관객 분들께, 언제나 ‘희망과 치유’를 선사해 드릴 수 있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를 접하는 분들 중, 특히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청소년 및 청년 분들에게, 제 인터뷰가 희망의 메세지로 다가오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기회를 주신 ‘Avec G’ 관계자분들과,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유재우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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