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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작곡가 <김현섭>

6/7/2019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는 신기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책' 혹은 '음악', '영화' 등 문화와 예술이 그들의 삶에 접목해 있다는 점이다. 김현섭은 청소년기에 다른 것이 아닌 국악에 빠졌고, K-POP 가수 방탄소년단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 입성하는 한류의 정점을 찍은 오늘 날에도 만 스물 여덟인 이 청년은 묵묵히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의 전통 음악'인 국악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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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삶을 통해 악(樂)을 배우는 작곡가 김현섭입니다.

“악(樂)은 삶을 반영한 형태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저에게 악(樂)은 악(樂) 만들기는 들리지 않는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며, 눈으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귀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그런 소리의 실체는 지금껏 경험한 일 들이였습니다.

이후 전 악(樂) 만들기 전 가장 먼저 현재의 자신에 대해 살피게 되었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경험은 가장 솔직한 악(樂)의 씨앗이 되기도 하며, 나만이 지닐 수 있는 음악적 언어가 됩니다.
​앞으로의 삶을 통해 배움을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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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다름 아닌 작곡, 그것도 '국악 작곡'을 진로로 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앞집 누나(임지영)의 동요 '나비야' 연주를 듣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하였으며, 악보를 찾아 연주하곤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저는 초등학교 때 서울시 영재로 발탁되기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콩쿠르에 나가 여러 번 수상하기도 하였고, 피아노 전공으로 진로를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피아노과 진학의 꿈은 접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음악 선생님(백나미,정성숙 선생님)의 권유로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며, 피아노과 진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음악적 호흡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정수년 선생님의 연주한 슬기둥의 '그 저녁 무렵부터 해질녘까지'입니다.
 
새로운 음색과 만남 이후로 저의 진로는 방향성이 전혀 바뀌게 되었습니다.
항상 피아노를 치며 나만의 음악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다 하는 마음과 라디오를 통해 처음 듣게 된 국악기의 진한 소리의 합은 저를 작곡+국악=국악 작곡으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기 층이 높지 않고, 인식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국악'을 한다는 이유로 저변을 넓혀가는데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요?
 
'국악은 느리고, 지루하다. 고루하며 옛것이다?'
'국악은 촌스럽고, 클래식은 고급스럽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나물 반찬을 해주시면 ‘왜 이 맛없는 것을 먹으라고 하시지?’라는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웃음) 더불어 건강에도 좋다는 걸 알게 되었죠. 누구든지 각자만의 삶의 방법과 철칙이 있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그 속에서 자리 잡은 선입견 역시 품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이는 경험해보지 못하였거나,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주류였으며,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아주 짧은 시간 국악에 대해 공부를 하고 넘어가곤 했을 뿐, 국악을 접할 기회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국악 전공 선생님들이 많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듣지 않고,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의 본래의 뿌리이기에, 지켜야 할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좋은 음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국악에 대하여 하나씩 모르던 것들을 알아가게 되면서부터, 그 속에서 선조들의 숨과 우리정서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좋아하고 즐겨듣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누군가에게도 한번이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저의 지인들은 저의 음악을 사랑해주면서, 동시에 국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많습니다.

‘다시 국악을 들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그 한번이 없었다면 편견으로 인해서 얻지 못했을 감사함 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음악의 장르와 경계가 무너진 지금, ‘국악은 우리 음악이니 들으세요. 좋은 음악이니 들으세요!’라며 말하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 대한 문화/언어적 폭력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악인이 수많은 시도와 방향을 도모함으로써, 전과 다른 방향을 꾀하고 있으며, 대중매체에 나오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다가간 듯합니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닌, 언젠가는 저만의 음악 속 뿌리를 찾아야 할 때가 있었을 겁니다.
​국가의 민속 음악을 기반으로 세계적 현대음악으로 꽃피운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1881~1945)과 같이, 장르와 경계를 넘어, 우리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계적인 문화인으로서 세대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음악은 가장 솔직한 예술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인으로서 가장 솔직하게 향유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음에 자랑스럽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이 ‘한 번’이라는 기회를 꼭 얻어보시길 말뿐만이 아닌 진심으로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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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작곡과 수석 졸업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진학한 분야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였음에도 결국 '예술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군 면제'의 장벽은 넘지 못하셨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술가로서의 2년간의 공백기는 경력 단절은 물론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집중도를 100%, 그 이상 발휘할 수 없기에 큰 타격임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저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습니다.
군 생활을 38년을 하셨고, 지금은 명에 퇴직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거처는 군부대였으며, 군대 지형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재밌게 놀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보니, 우리나라 사나이라면 당연히 가야 할 군대에 간다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가장 예쁜 나이이기도 하며,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임에는 틀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악계에는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대회가 최소 3개 이상이 있습니다.
이는 대통령상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저 역시 대학 시절 군 면제를 위하여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하였지만, 3번 중 2번은 2등, 한번은 예선에서 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며 좌절하기도 하였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4학년에 대회에서 2등을 한 저는 ‘입시와 같은 입대시험을 거쳐 ’군악대 작곡병‘으로 입대했습니다.
 
훈련소 시절, 걷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원망이 더 커지기도 하였으며, ’한 번만 더 해볼 걸‘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군대를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거쳐 갔습니다.
 
’과연 나는 내 삶에서 2등인 사람일까?‘ ’그렇다면 내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2등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일까?‘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예술과 음악을 등수를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등의 깊이 있는 고민은 어린 나이에 많은 수상과 경험을 하며 겸손함을 잃어버린 나를 다시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 돌려놓게 되었습니다.
 
군악대 자대로 가서, 많은 인연을 만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보게 되었으며, 미국 버지니아 국제 타투에도 대한민국을 알리는 음악을 편 작곡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더불어 병장 때 국립국악원 온나라 국악 경연대회에서 작곡부문 금상을 받았습니다.

저만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대회의 1등 수상으로 인해 군 면제 혜택을 받은 분들이 군 생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운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나이에 군대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겸손함보다 자만함이 앞섰을 것이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하여 배운 삶의 지혜는 얻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제자가 군 면제를 위해 저를 찾아와 수업을 부탁하였을 때도, '네가 군대에 간다는 약속을 한다면 도와주겠다. 군 면제가 없는 년도에 대회를 나가자‘라는 제안하였고, 그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제자는 그 대회에서 일등을 하였고, 곧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부합니다. 제자는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며,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음악이 성숙해질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군대를 다녀온다면 내 음악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핑계를 두고 싶은 건 아닐까요? 뭐든 맞서보면, 지혜를 얻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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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회에서, 무대를 통해서 많은 작품을 선보이셨습니다. '작곡가 김현섭'의 음악의 특색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가장 간단한 질문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보다 저를 잘 아는 사람은 저겠지만, 또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웃음)

김현섭의 음악은 '현섭답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작곡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며, 이를 소리 언어로서 표현해내며 시대와 함께 소통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좋은 경치를 보며 영감을 얻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 속에서 영감을 얻듯, 각자만의 영감을 얻는 방법과 기로는 다르겠지만, 저는 저만의 삶의 방식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가슴속 멍으로부터 음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녹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김현섭의 음악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려 노력하며, 진심을 담아내는 음악'입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였을 때 생명력을 얻기에, 현시대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 내보고자 합니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협업했었습니다. 특별히 앞으로 협업을 해보고 싶은 연예인이나 다른 예술가가 있나요?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며, 사교성이 굉장히 좋습니다.
첫인상이 좋지 않을지언정, 알고 보면 참 여리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제 입으로 민망하지만 말하겠습니다. (웃음) 그렇기에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으며, 다른 이들의 소리 언어를 포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분야와 장르를 나누지 않고, 어떤 작업이던지, 김현섭이 필요하다면 달려가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해보지 않을래요? (웃음)

 
국악 작곡가로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먼저 우리 선조들은 자신만의 가락을 통하여 시간이 흘러도 '지지 않는 꽃'을 피우고 싶은 바람이 지금의 우리 음악으로 남은 듯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현섭도 없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옛날 우륵이 가야금으로 세상의 이치를 담아내었듯, 전통음악 속에 있는 미학을 자신만의 창의적 언어로 풀어 아름답고 지지 않는 꽃을 피워내는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더불어 창작을 하시는 모든 분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음악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신 박승률 선생님.
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신 원일 선생님.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신 신동일 선생님.
장인정신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해주신 故강준일 선생님.
어머니처럼 항상 어려운 점이 있을 때마다 품어주신 임준희 선생님.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신 이귀숙 선생님.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저를 달래 주셨던 김성진 선생님.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소리화 시켜야 한다고 알려 주신 이명숙 선생님.
인간의 삶은 목련과도 같다고 가르침 주신 김해숙 선생님.
지금의 김현섭을 있게 해주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하나님.
​
저와 함께 소통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신 모든 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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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고 싶습니다.
현 월간뮤직리뷰 에디터 “김현섭의 Art x 인(人)”을 통하여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많은 문제점과 현실에 부딪혀보고 있습니다.
 
표면으로 드러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아닌, 악(樂)으로서 우리 국민과 지구촌 많은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가치관을 실현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많은 계획표 속에서 지치지 않고, 웃으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가로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꿈은 큰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헐뜯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를 발전시키고 융성시키는 것은 그 분야에서 활동하던 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꼭 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앞으로의 작곡가 김현섭 역시 “인간 김현섭” 이고 싶습니다. 좋은 향을 낼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힘껏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김현섭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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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4/2/2020 08:04:12 am

너무 자랑스럽고 멋있네요.
저의 어머니도 국악을 하시는데, 국악찬양이라는 장르로 새롭게 하시고 게시는데. 국악찬양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국의 교회에서 초청하여 전국을 돌아디니시며 예배로 공연하고 있답니다.
저희 큰딸은 해금을 전공하고 있고요
이렇게 저는 국악을 사랑한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것은 이 국악이 우리나라에서만 들려지는 음악이 아니라, 전세계로 나아가야하는데... 제생각에 국악을 이끄는 이들이 각종대회를 돈으로 순위를 정하는등 너무 부패되어 있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국악을 발전시켜 꼭 세계적으로 들려지는 그런 국악으로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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