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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방법원 판사 <류영재>

1/11/2020

 
2017년 우연한 계기로 사법농단이 사회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3천 명 판사들의 분노를 잠재우며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고 무마하려는 정권에 류영재 판사는 진실을 알리는 SNS 포스팅을 꾸준히 올리며 맞섰다. 그리고 국민들이 알지 못했던 사법농단의 진실의 어둠 속에 불씨를 붙였다. 그 작은 불씨였던 그녀의 포스팅은 횃불이 되어 결국 사법농단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

현재도 SNS를 통해 판사로서는 이례적으로 비법조인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류영재 판사는 올해로 임관 10년 차를 맞이하였다. 판사로서 걸어온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사법농단을 비롯해 검찰개혁, 사법고시 존폐 등 법조계의 여러 현안에 대한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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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12월 12일 열린 제1회 메디치포럼 행사장에서 '평생의 지지자'인 어머니와 함께.
이날 류영재 판사는 '사법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출생]
1983년 2월 27일 (대구)
  
[학력]
 1998년~2001년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
2001년~2006년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경력] 
2009년 제50회 사법시험 합격
2011년 제40기 사법연수원 수료 (사법연수원장상 수상)
2011년~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2013~2015년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2015~現 춘천지방법원 재직 중
 
[논문]
♠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론과 재판실무의 운용, 한국언론법학회, 언론과법 제15권 제1호(2016)
♠ 사법의 책무와 독립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실천적 제안: 사법행정 제도개혁을 중심으로, 법과사회이론학회, 법과사회 60권(2019)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류영재입니다. 춘천에 살면서 일과 시간에는 재판 업무를 하고 밤에는 야근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쉴 때는 SNS를 통해 비법조인 페이스북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합니다. 판사 중 SNS를 하는 분들이 드물어 본의 아니게 그 방면으로 알려졌기도 합니다. 인권보장, 표현의 자유, 차별금지에 관심이 많고 요즘엔 법원개혁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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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때 남동생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고등학교인 대원외고 출신으로 만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 진학`, `디자인과 출신 판사`, `사법농단의 진실을 알린 판사` 등 개인의 배경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예능 출연, 야구경기 시구 등 판사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자주 보이셨어요. 사회적으로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지다 보니 삶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제 경력이 판사치고는 특이하지만, 사람 자체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경력만으로 제 삶이나 이미지가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이하다’, ‘화려하다’, ‘천재적이다.’ 등.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제 얘기가 아닌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디자인과를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된 것은 단순히 디자인이 제게는 너무 어려웠고, 디자인 외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였습니다. 그에 비교해 법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학문이었고,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것도 제 성격과 맞아 비교적 수월하게 시험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 와서도 재판부 구성원들이나 소수의 친구와 어울렸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주위에 법조인들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법조인들과만 어울리다 세상의 상식과 내 상식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SNS를 통해 비법조인들의 생각을 나눔 받고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SNS 시작 당시만 해도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는데, 2018년 사법농단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 포스팅을 공개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주목받는다는 것은 제 성격과 거리가 먼 삶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는 것이 어색합니다.
 
포스팅 하나를 할 때도 자기검열이 강해지게 되었고요. 특히, 몇 번 특정 언론이 작정하고 저를 ‘정치판사’라고 낙인 찍으러 비난했을 때는 온 가족 친척들이 ‘괜찮으냐’고 연락이 온 적도 있었어요. 그러한 순간은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은 맷집이 길러져 익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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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사법연수원 수료식.
류영재 판사는 수료식 당시 연수원 40기 969명 중 10등으로 사법연수원장상을 수상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당시 10등으로 사법연수원장상을 받으며, 연수원 입소부터 목표하셨던 판사가 되셨습니다. 만약 그 당시 변수가 생겨 판사가 되지 않고, 지금 검사나 변호사가 되었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연수생 시절 검찰 시보와 변호사 시보를 각각 해보았는데, 당사자들과 거리감이 굉장히 좁혀진 상태에서 일해야 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검사나 변호사가 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싸움꾼이 되어서 재판에 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의뢰인이나 피해자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요.
 
검사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피고인을 수사하고 기소하여 유죄를 입증하는 역할을 하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법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을 수행하지요. 판사직보다 훨씬 활동적이고 상상력이 있어야 하며 사회정의를 중요히 여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검사가 되었더라면, 글쎄요. 에너지가 달려 좀 힘들어했을 것 같습니다.
 
한편 검찰개혁에 대해 언급하자면,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현재 검찰제도는 검사 한 명 한 명이 열심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검사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기에 무리가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검사는 본래 수사 과정에서의 적법절차 원칙이 지켜지도록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통제하고 법률전문가로서 범죄를 기소하여 재판에 임하는 역할의 전문가인데, 지금은 직접 수사 및 수사지휘에 너무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무래도 수사의 적법성 통제나 공소유지 역할은 부실해지고요. 이 경우 검사도 스스로 본연의 역할을 못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재판이 부실해져 국민이 공평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점을 극복하고 검사가 검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변호사면, 일단 ‘이기고,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는 데 집중했을 것 같아요.
변호사는 무엇보다 의뢰인을 위해서 사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사실관계를 재구성하고 법리를 찾으며 의뢰인이 최고의 이익을 얻을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제가 지금은 판사이고, 판사 본연의 역할 중 하나가 ‘형사재판절차에서의 수사적법성 통제’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형사법에 관심이 많고, 또한, 판사 역할의 본질이 ‘인권보장’이어서 헌법과 인권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변호사가 된다면 민사 분야에 전념할 것 같습니다. 민사소송은 변호사의 역할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이끌어져 나올 수 있는 분야라서 흥미롭고 뿌듯할 것 같아요. 그리고 틈틈이 공익소송 대리를 했을 것 같습니다. 공익소송 대리는 소수자, 약자와 법적으로 연대할 방법이니까요.
기억에 남는 재판은 무엇이고, 판사로서 가장 ‘공정한 재판’을 위해 유의하는 점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우선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이거나 피고인이었던 형사재판들이 떠오릅니다.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이거나 피고인일 경우, 그들과 제대로 의사소통하고 그들의 진술을 제대로 이해하며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진술조력인 내지 신뢰관계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그들이 재판참여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한 번은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했는데 그 진술번복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들어 전문가 상담을 추진해보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거부로 진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요. 다른 장애를 겪고 있는, 예를 들어, 시력 저하 또는 청력 저하를 겪고 계신 노인 당사자들의 재판 참여권 보장도 문제가 되겠지만, 특히 지적장애인이 형사사건의 피고인 또는 피해자가 되면 그들의 재판참여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하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재판할 때는 양 당사자 중 한쪽에 ‘편파적인 진행’을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지’에 대해 가장 유의하는 것 같습니다. ‘공정한 재판’ 진행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찾은 답은 ‘솔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사자들에게 심증을 드러내고, 그 심증이 형성된 근거를 말하며 앞으로의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당사자들과 토론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한 사건 한 사건마다 시간을 많이 투입할 수 없어서 이런 방식의 재판 진행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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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류영재 판사는 탐사보도 인터넷 방송인 '뉴스타파'에 출연하여
현직 판사로서 느끼는 '사법농단'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그동한 못한 고백과 진실을 밝혔다.
벌써 사법농단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도 4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판사로서 겪은 사법농단의 의미와 이 시기에 중요시해야 할 법원개혁의 큰 방향성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2017년 우연한 계기로 드러나게 된 사법농단은 크게 ① 사법부의 청와대, 국회에 대한 재판 관련 협의․정보제공․법률자문서비스 제공, ② 사법행정권자의 개별 재판 통제, ③ 판사 사찰 및 특정 연구회 탄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법농단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청와대나 국회를 견제하고 통제하여 국민의 자기지배를 실현하게 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져버리고 사법부가 오히려 청와대나 국회와 협력하여 사법조직을 강화하고 통치권력의 일환이 됨으로써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법원 내부로는 판사들의 재판을 통제하고 외부로는 청와대 등과 협력하면서 사법독립을 스스로 버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권한, 사법행정과 재판의 연결, 승진 중심 법관인사제도, 불투명하고 통제받지 않는 구조가 한 데 모여 발생한 참사인데, 특히 사법이 어떤 경로를 거쳐 사법부가 되고 사법권력이 되는지 잘 보여준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사로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느끼고 있으면서 방지하지 못한 데 책임감을 느낍니다. 위와 같은 사법개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법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강화되어야 하며, 사법부가 아닌 법관이 독립될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변경해야 합니다.
 
사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판결문 공개, 사법행정 정보 공개, 시민사회 참여형 사법행정 시스템 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위하여 법관 외부평가 및 다면평가, 법관 징계제도 개선 등이 논의될 수 있으며, 법관 독립을 위하여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판사회의 강화, 전보인사 축소 등의 인사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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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UN OHCHR (유엔인권고등판무관) 출장 당시 제네바에서
그동안 ‘판사’로서 참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현직에 대해 고민해보신 적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보람을 가질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판사를 천직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매번 ‘나 같은 사람이 재판에 임해도 되는가?’ 자괴감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판사로서 뿌듯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형사재판을 하면서 수사기관이 절차적인 위법을 저지른 사실을 발견하여 적절히 통제한 순간이 있었고, 유무죄를 고민하면서 기존의 익숙한 법리를 기계적으로 따르지 않고 좀 더 인권보장적으로 법을 해석할 수 있는지 각종 연구자료를 찾아보며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면 할수록 재판은 단순히 시험을 치듯 정답을 맞혀나가는 과정이 아닌 것 같아요. 부여받은 많은 역할이 있고, 항상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문제의식을 벼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을 벼리기 위해 연구 활동이나 사회생활도 필요하고요. 그런 점들을 깨닫게 된 것도 자랑스럽네요.

앞서 언급했듯 SNS를 통해 좋은 글을 포스팅하고, 기사를 공유하며 비법조인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 외 단점, 그리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메시지 혹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판사 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법조인, 그중에서도 판사들로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판사들끼리만 만나고 판사들끼리만 얘기하는 것은 사실 편하고 안전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내 생각이 시대정신에 들어맞는가?’, ‘우리 사회의 담론을 따라가고 있는가?’, ‘사람들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헌법은 시대정신에 따라 변화하고 법 또한 현실과 떨어져서는 안 되는데, 헌법과 법을 해석하는 판사가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있으면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온라인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회의 담론은 다양하며 수준이 높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많이 배웠고 재판 사안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 배움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법조인들과 비법조인들 사이에 괴리가 상당하다는 점, 재판에 대한 오해가 크다는 점도 깨달았고 그 괴리를 좁히며 오해를 풀기 위해 SNS를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SNS를 해서 가장 좋은 장점은 알지 못했던 사회의 담론들을 알게 되고, 그 이슈들에 대해 좋은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점으로는 SNS로 인해 예기치 않은 오해가 발생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SNS는 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개된 의사표명이기도 하므로, 혹여 제 포스팅이 오해를 살만한 표현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부정확하지 않은지 계속 ‘자기검열’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이 SNS의 단점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메시지, 에피소드보다는, 제가 어떤 이슈 - 주로 인권보장, 차별금지 등의 이슈 - 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비법조인 페이스북 친구분이 저와 다른 의견을 댓글로 달아 주시고, 제가 거기에 대해서 다시 제 의견을 밝혀 나가면서 토론을 길게 할 때, 그 토론의 결과가 어떻게 끝나든지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참 많이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저는 판사임을 밝히고 SNS를 하므로 저의 페이스북은 완벽한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위 ‘키배’를 끝장나게 뜬다든지, 그런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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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판사는 '판사의 본질은 '인권보장'에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2013년 유럽인권재판소 출장 당시.
현재 전국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에서 5천여 명의 학생과 그 외 변호사시험(이하 변시) 재수생 수만 명이 예비 법조인을 꿈꾸며 공부 중입니다. 학부 졸업 후 2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신 판사님께서는 사법고시 존폐와 로스쿨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법시험을 보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즉시 판사로 임관된 전형적인 “사시세대” 법률가입니다. 한편으론, 대학 졸업 때까지 법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고, 법과 무관한 학과를 전공한 후 비로소 법을 공부해 법조인이 되었다는 점에선 로스쿨생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사법시험이나 로스쿨이나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기간 한정 없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시험공부를 한다는 점에서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 시스템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법률지식을 충실히 습득하는데 최적화되어있고, 성적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학벌이나 성별 등에 의한 차별을 뒤집을 기회가 제공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 시스템은 한편으론 외국 로스쿨에는 필수과목으로 법조인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학문인 인권법이나, 그 외에 논증하는 법이라든지, 사실인정 하는 법이라든지, 법철학이라든지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이 되는 학문을 배울 기회와 필요성을 모두 배제하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로스쿨은 그에 비해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을 배운 후 법조인이 되는 과정을 거치게끔 되어있고, 로스쿨에서도 법조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익히도록 하는 제도인데, 문제는 지금 그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아가 로스쿨 제도가 갖는 학벌과 연령, 성별 차별 등의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양 제도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법조인 양성 과정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법조인 양성제도로 로스쿨 제도를 선택했고, 그 사회적 합의를 존중합니다.
 

법조인을 꿈꾸는 분들에게 멘토가 될 수 있을만큼 제가 특별히 훌륭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조언을 드리자면, 로스쿨에 입학하기까지, 그리고 로스쿨을 수료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계속 고되고 지친 과정이 지속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일단 법조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니,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열심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가능하다면, 법이 사람을 다루는 실용학문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 주시길 바래요. 법은 기본적으로 논리학에 가깝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분야는 현실, 그것도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尊敬`. 이 단어의 어원은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함`이 국어단어는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정물을 보면 재판정에서 판사를 대할 때 대부분 `존경하는 판사님`이라는 문장과 함께 발언을 시작하지요. 그리고 법관 사이에서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도 `존경하는`을 붙이는 관례가 있습니다. 판사님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법조인은 어떤 분이 계신지요?
 
먼저 군부독재 시절 독재에 부역하지 않는 재판을 하려고 노력했고 그 후에도 법원개혁과 진정성 있는 재판을 위해 행동하시고 고민하신 선배 법관님이신, 박시환 전 대법관을 존경합니다. 어떤 판사가 훌륭한 판사인가 - 아무리 법리에 밝더라도 행동하는 양심을 갖지 못하면 훌륭한 판사라고 칭할 수 없다는 점을 몸소 실현하여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전수안 전 대법관님도 존경하는데요, 그분이 내신 소수의견들과 대법관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전념하시는 소수자 인권보장 활동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사법연수원 교수님이자 선배 법관이 계십니다. 연수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판사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에요.
 
제가 존경하는 이 세 분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훌륭한 판사, 완벽한 법조인이라고 자평하지 않으세요. 밖에서 보면 두 분은 대법관까지 역임했고 다른 한 분도 소위 아주 잘나가는 법조인인데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좀 더 진정성 있게 법조인으로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는데요,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있다는 점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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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판결'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는 춘천지방법원 류영재 판사의 사무실.
사무실 한쪽에 세워둔 자전거가 눈에 띈다.

올해로 10년 차 법관이십니다. 어떤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
 
2011년 판사로 임관했을 때엔 법리적으로 밝고 중요한 재판을 도맡아 하는 판사가 되고 싶었어요. 욕망이 넘치는 시기였죠. 그런데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고, 법관의 본연의 역할을 인식하게 되고, 사법의 역사를 배우면서 소위 ‘잘나가는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헛된지, 나아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법농단이 발생할 즈음에는 이미 ‘승진‘, ’잘나감‘ 같은 직장 내 위치에 대한 욕심은 버린 지 오래였고, 대신에 각종 ‘인권규범‘을 공부하고 재판에서 느낀 ‘문제의식‘에 대해 고민하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사법농단을 거치면서 판사에 대한 어떤 고정된 상은 더 옅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제발 나이가 들더라도 세상의 담론, 상식과 괴리되지 않고, 아집과 고집에 빠지지 않고, 선민의식과 오만함에 빠지지 않고, 항상 눈앞에 있는 재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최소한 “덜 꼰대스럽다”라는 얘길 듣고 싶네요.

 
공식 질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2020년에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인의 삶과 재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SNS를 통한 소통은 계속하겠지만, 사법농단 및 법원개혁을 알리기 위해 계속해왔던 외부 활동들을 가능한 줄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신 재판에 더 집중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올해 써놨던 발표문들을 논문으로 편집하는 작업도 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별것 없는 인터뷰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류영재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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