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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정충구>

6/24/2019

 
1990년도 부터,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소신대로 연극 무대를 지켜오며, 언젠가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웃고, 울고, 연기로 관객을 치유하고, 자신도 치유 받는 그 날을 꿈꾼다'는 배우 정충구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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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평생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은 정충구입니다. 

저는 항상 대본을 만났을 때, 역할을 만났을 때, 이런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안 보이는 데까지 보라. 보여 줄 땐 최선을 다해 보여줘라.’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연극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마음을, 평생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는 말씀들을 연기하면 할수록 더더욱 느끼는 부족한 배우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저 자신에게 욕하고, 마음속으로 ‘멍청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오늘도 대본을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새로운 것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사인 ‘연기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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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을 꿈꿨지만 결국 배우의 길로 접어들어, 1991년 연극 `넛츠 `로 공식 데뷔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학창시절에는 꿈이 없었습니다.
꿈을 꾸기보다는 하루하루를 흘러가는 데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시와 소설을 접하게 됐고 시인과 소설가를 꿈꾸게 됐고 윤동주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문학과를 지망해 더욱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목표가 생기니 안 하던 공부를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저만의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부족한 저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재수했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제가 대학 입시에 도전할 시기에는 전기대와 후기대로만 나뉘어 있어서, 다른 대학에 국문학이 아닌 다른 과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합격 소식을 접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때에, 우연히 신문에서 대학로에 있는 `극단  로뎀 `이라는 단체에서 워크숍 1기 단원을 뽑는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고, 중학교 때 연극반 - 정확히는 연극을 보러 다니는 반 - 활동을 한 것도 생각이 나고, 그렇게 엉뚱한 마음이었는지, 운명이었는, 합격통지서랑 기사를 번갈아 보다가, ‘더 큰 곳에 가겠다’는 마음에 ‘대학’이 아닌, ‘대학로’에 첫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저의 진로 변경에 대해 지인 중에는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그때까지는 아직도 연극활동에 대해서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이  했습니다 . 그런데 그 생각들을 보기 좋게 이겨내고, 내년이면 연극 무대에  오른 지  30년이네요.

처음 극단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을 말할 것도 없었고 가장 힘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배워야 하는 상태였으니까요.
연기에 대한 것부터 선배 후배와의 인간관계 또 연극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배울 것이 너무 나 많았습니다. 

전문적으로 배경이 있거나,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  했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것도 특별히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깨닫고, 대본에  흰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저의 연극생활, 극단 생활이 처음은 쓰고, 지우고, 혼나고, 쓰고, 지우고, 혼나는 것의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무대는 ‘준비된 자’ 그리고 ‘만들어진  자’가 올라가야 한다는 극단 대표님의 확고한 생각에 무대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여 년의  시간이 지나, 1991년에 ‘넛츠 ’라는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고, 단 두 마디 대사를  수천 , 수만  번의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법정드라마여서, 저는 법정을 지키는  정리 역으로 , 영광스럽게도 단 두 마디였지만,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무대의 조명은 생각보다 뜨겁고, 관객의 시선은 무섭고, 두렵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제 모습은 행복했습니다.

공연 마지막 날 커튼콜을 하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그날 밤새 울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첫 무대에 올랐다는 감동, 오르기까지 과정 등, 그냥 복잡한 마음들이 눈물로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장난처럼 자신의 현실을 탓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난 똑같은 사람이기에 어느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도 연극배우의 길을 택한 저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배우 정충구`가 있도록 연기에 도움을 가장 많이 준 평생의 스승님이 있나요?

모든 선배님과  선생님들 후배들이 다  스승이었습니다 . 
희곡이, 무대가, 함께한 사람들이, 다  스승이었습니다 . 
제 주변엔 언제나 배울 사람들과, 배울 희곡과, 배울 무대와, 배울 책들이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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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벌써 연기 인생  30년입니다 . 대학로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돌아보면 잊지 못할 추억과 인연도 많을 것 같습니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대학로에서  만났던 특별한 인연이 있나요?

무대에 올랐던  많은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특별히 극단 실험극장에서 공연했던 2002년 ‘검정고무신’이라는  작품과 2012년  ‘로베르토  쥬코 ’, 그리고 2012년 ‘환장지경 ’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검정고무신’이라는 작품은 배우들과 연출도 좋았지만, 제가 지금껏 숙제로 가지고 있는 ‘비우자' 그리고  ‘버리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 ‘나를 비울 수 있어야 더 많이 채울  수 있고 , 나를 버려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든 작품이고, 지금도 그 숙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버리고, 무대에 올라, 커튼콜 때까지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관객의 박수로 채우고 나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베르토  쥬코 ’에서는 주인공인 ‘쥬코 ‘역을  했는데 , 무대라는  것이 ‘작품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배우 , 스태프들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스태프들의  시선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를  믿는  시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장지경 ’은 사극 작품인데 양녕대군의 이야기입니다. 
작품에 평이 좋아서 몇 번의  앙코르를  거쳐 몇 년간  공연되었는데 , 좋은 작가를 만난 것과 함께 매번 새로운 것이 대본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작가도 모르는 새로운 느낌과 호흡을 배우가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입니다.

제가 지금껏 만났던  모든 배우와, 연출들 , 제작진들과의 인연은 늘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시작할 때는  작품 욕심에 싸우기도 하고, 오기를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헤어질 때는 이산가족처럼 아쉬워하고, 슬피  우는 게 , 연극을 하면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몇 개월에서 길면은 몇 년을 함께 하니 항상 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특별하지만 ‘검정고무신’ 때  만난 김성노 연출님, 손규홍  연출, 손혜선 연출과 ‘환장지경 ’ 때  만난 홍석진 작가와 김정근 연출은 마음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  네 분의  연출은 ‘연출이 배우를 믿어주면 이렇게 힘이 되는구나’하는 걸 느끼게 해준 고마운 연출들이고, 홍석진 작가는 지금도 나의 연극에 함께 하는 동료이면서, 작가로서 ‘나’라는 배우를 생각하고 작품을 쓰는 고마운 작가입니다.

저는 사람을 사귀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않아, 주변의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많은 지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소중하게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가는  스타일이라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 지인들, 연극동료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의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작년, 포항바다국제연극제  최우수남자연기상을 받으셨습니다 . 데뷔 이래 첫 수상이십니다.

연극을 하면서 상을 탄다는 것에  많은 배우가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몇 번의 연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상복은  없는 편이라, 처음으로 ‘포항바다국제연극제 ’에서  최우수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는데 , 일단은 큰상이고, 작은 상이고를 떠나 기분이 매우 좋고, 삶의 전환과 활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로 인해, ‘상은  타볼 만  하다는 것’, 그리고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궁전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하였는데, 연극의 내용은 1999년,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궁전다방’이라는 한 다방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재미와 감동, 사람 사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내용의 작품입니다.

대한민국에 많은 연극제가 있지만 ‘국제’라는 말이 붙는 연극제가 좀 더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상을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수상 당시, 저는 다른 작품의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 수상식에 참가하지 못해, 대리수상을 하였는데,
‘너 상 처음  탄 거냐 ?’
‘전에 타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들이 정말 연기를  못했나 보다 .’
‘술 사라.’ 등,
주변의 반응은 장난스러운 사람도 있었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인들은 제가 오랜 시간 힘들게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술 한잔 사면서 제 손을 잡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제 연극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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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녀가 아버지를 따라 배우를 하겠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만약, 제 아이가 배우의 길을 걷는다면, 도움을 주거나, 지원해주는 것은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기  때문에, 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일은, 뒤에서 묵묵히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택을 자신이 했으니, 후회하거나 , 행복을 찾는 것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지만, 그 삶까지 제 것은 아니니까요.

배우의 길은 평생을 연기에 대한 고민과 생활에 대한 고민의 연속입니다. 
연기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도 있지만, 살아가는 생활의 고민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가’의  문제인  듯합니다 .

배우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금전적으로는 절대로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기에, 많은 배우는 가정을 꾸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얘기와 비현실적인 마음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배우의 벌이로는 생활이 힘듭니다.

언젠가 국민연금을 내는 과정에서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30년을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서온 저였기에 당연히  저는 ‘연극배우 ’라고  직업을 소개했는데,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저를 무직으로 보더라고요. 정말 슬프지만, 아직도 이것이 연극계의 현실입니다.


`배우 정충구`에게 `연기`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연기를 하면서 점점 생활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하는 것이죠.

무대에 올라가는 연기에 임하는 후배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연기는 네게 현실이고, 관객에게는  감동이어야  한다. 네가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마라.’
제가 날 것 같은, 살아있는 모습들을 관객에게 보여 주는 것이 연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연기를 잘하기 위해 안  보이는 데까지  보려고 노력하고, 보여 줄 땐 최선을 다해 보여 주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배우가  다 노력하고, 고민하고, 대본을 보고, 책을 읽고, 수많은 경험을 하고, 연습하고 , 무대에 오릅니다.

전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동안 연습하고, 고민한 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
​그리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비우자’,‘버리자’라고  되뇌며 ,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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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앞으로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극무대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 연기하려고  준비 중이고 실행 중입니다. 

언제나 희망하고 꿈꾸는 세상은 연기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만들어, 직접 연기하고 싶습니다.

또한, 언젠가 연기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과  만나고, 느껴보고 싶습니다.
함께 웃고, 울고, 연기로 관객들을 치유하고, 저도  치유받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람들은 이름 앞에 또 다른 이름이 붙을 때가 많습니다. 
작가 누구, 공작 누구, 백작 누구, 축구선수 누구, 대통령 누구 등.

배우 누구인, ‘배우 정충구’라는 이름이 앞에 붙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겁니다.

저는 오늘도 그렇게 연극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연기자로서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하면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다른 매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장르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해  많은 배우가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연극 무대를 떠나 다른 장르를 찾고, 다른 직군을 택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다양한 장르에서, 좋은 모습에 연기를 보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혹여, 저는 그런 세상에서 살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배우!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답다.’라고  인식 받는  세상에서요.

마지막으로 제가 죽었을 때, 묘비명에 ‘배우! 정충구. 이곳에 잠들다.’라고 쓰인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정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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