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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디스태프 대표 <기동훈>

6/22/2019

 
의사와 환자들의 더 나은 복지와 정책을 위해 SNS를 통해 정부와 의사협회의 기울린 의정에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의사! 그리고 어떤 것보다 대표로 있는 회사를 통해 '젊은 의사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여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기동훈 교수와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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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메디스태프 대표이자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진료교수로 재직 중인 기동훈입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피부과의 전공의 과정을 시작한 지 3달 만에 그만두고, 이듬해 응급의학과로 전공을 바꾸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쳤습니다. 응급의학과로 진로를 택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인턴을 하면서 응급의학과에서 두달 동안 일하면서 재밌고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과 지원에 있어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했기에 고민 끝에 피부과에 지원했습니다.

피부과는 아름다움과 질병을 같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과였지만 일을 할수록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 내 분위기도 잘 맞지 않아서 결국 3개월 후 그만두게 되었고 같이 시작했던 동기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피부과 전공의를 그만두고는 모 대학병원 안과에서 전공의결원이 생겨 두 달간 일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응급의학과 지원을 마음속으로 결정한 상태였지만 안과적 응급질환을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즐겁게 일했습니다.

응급의학과를 지원했던 이유는 응급실로 내원하는 급성기 질환 환자들에게 빠른 판단과 처치를 통해 호전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신없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와 경증환자를 구별하고 중환자 처치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피부과를 그만두고 응급의학과에 지원하기로 했을 때 친구들 가족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말렸지만, 응급의학과를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슬퍼하셨던 것이 제게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힘든 길을 선택하는 자식을 보며 들게 된,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한 적도 있고 무례한 보호자들에게 불편한 일을 겪을 때 가끔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단, 처치로 환자들이 호전되고 환자나 보호자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때 역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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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공중보건의로서 군 복무를 이행하게 되면 36개월간 처음 배정받은 부대나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전역하게 되는데, 교수님은 강릉교도소에 계시다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근무지를 발령받아 전혀 다른 두 곳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전혀 다른 두 곳의 군 생활은 어떠했었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공중보건의사들은 시골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로 배치가 되어 첫 의사 생활의 시작을 교도소 의사로 시작했습니다.
 
교도소 의사로 일하면서 보건지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다양한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도소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지역사회에서의 교정 의료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고, 그렇다 보니 몸이 안 좋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핵 등의 감염성 질환,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추후 건강하게 지역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어, 교도소 공중보건의들과 합심하여 WHO에 나온 ’교정시설 의료지침’을 번역하는 일도 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닥터프리즈너’처럼 재소자들이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도 있고, 상습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수형생활을 마치고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인사는 재소자들 보면서 힘들지만, 보람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1년 근무하고, 교도소와 특수기관 공중보건의사 대표를 맡으면서, 서울중앙지검으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하는 일은 드라마 ‘닥터프리즈너’처럼 재소자들의 형집행정지 신청이 들어오면 검사님과 함께 해당 교도소를 방문합니다. 이 과정을 ‘임검’이라고 합니다. 저는 교도소 생활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중앙지검 관할에서 사체가 발견되면 검안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의료기록 자문, 검찰청 내 환자 발생 시 응급처치를 담당했습니다.
 
교도소 중앙지검에서 일하면서 일반 환자들보다 거칠고 때로는 부딪친 적이 많았지만, 사회를 보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공중보건의과정 없이 바로 수련의 과정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면, 지금 사회를 바라보고, 대하는 제 시야가 더 좁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들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교도소 공중보건의사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전문의 시험 직후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최연소로 출마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에 명시된 법정 단체로 전체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입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의 처우 진료환경은 악화하였으나. 의협은 난관을 해결하지 못하고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젊은 의사단체 대표를 역임하면서, 의사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제 후배 동료 선배들, 젊은 의사들과 모여서 토론하고, 직역 단체들을 통해 공중보건의사, 전공의들, 그리고 전체 의료계의 불합리함을 개선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기성 의사들은 후배들의 앞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해결책 없이 내부분열을 하고 있었기에, 이대로 후배들에게 불합리한 의료환경을 넘겨준다면 ‘우리도 부끄러운 선배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인 의사협회를 개혁하고,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담아 새로운 의협을 만들고 싶어서 출마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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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의학과 교수로 같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기에, 일명 '전공의법'에서 보장하는 주 80시간 (추가시간 88시간)의 근무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환경에서 주 120시간 이상 일하다가 결국 과로로 유명을 달리한 故윤한덕 중앙응급의료 센터장님이 떠오릅니다. 故윤 센터장님이 돌아가신 지 4개월이 지난 현재,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근무 환경은 바뀐 것이 있나요?
 
질문의 내용은 비단 응급의학과 만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응급의학과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필수 과들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사람을 살리는 필수 과들은 지방에서부터 경험 많은 의사들이 과도한 근무 시간, 규제, 비현실적인 보상으로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향후 10년이 지나면 정말 응급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어 많은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은 자명합니다.
 
모두가 ‘돈보다 생명’이라 말하지만,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현재 정부의 재정 운용은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보다 선심성, 포퓰리즘 투자에 치우쳐 있습니다. 필수 과가 몰락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없습니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필수 과는 비가역적으로 회생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故윤한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4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본인의 생명을 갈아 넣어 다른 생명을 살리다가 돌아가신 일이 생겼지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응급의학의로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매우 급한 상황 속의 격한 일들도 많이 겪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던 기억에 남는 환자나 일화가 있나요?
 
첫 내원 시 독감 진단을 받고 퇴원했던 환자가 갑자기 숨쉬기 불편하다고 다시 내원했었습니다.
산소포화도도 정상인데 갑자기 목을 잡고 숨이 막힌다고 힘들어했습니다. 

드물지만 감기가 후두개염이라 부르는 질병으로 발전한 것인데, 기도가 막히기 때문에 빨리 기관삽관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질환입니다.
 
급격하게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기도를 덮는 후두개가 너무 부어 기도확보가 어려웠습니다. 기관삽관에 실패하면 목을 열어 기관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도삽관에 성공하였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언젠가 여성 환자가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내원했는데 넘어져서 다쳤다고 제게 얘기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환자의 모습에 저는 검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분리하고 환자에게 다시 다친 이유를 물어보았고, 환자는 남편에게 폭행 당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원하고 있었기에, 직접 경찰에 신고하여, 그렇게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환자를 도와드렸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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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응급의학과로 일하고 계신 와중에, '메디스태프'라는 기업의 대표로 활발히 활동 중이십니다. 창업을 생각하고 시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은 전공의 때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일은,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고 정책에 참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세계의사회 산하 젊은의사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외국의 젊은 의사들과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에 관하여 얘기했을 때, 적극적으로 창업에 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도전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메디스태프’는 의사 그리고 환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진료를 위한 ‘환자 정보 공유 시 보안 메신저 기반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안전하게 환자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추후 확장을 통해 의사들의 삶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려 합니다.
 
메디스태프는 현재 저 포함 6명의 직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계획은 국내 보건의료지역의 대표 플랫폼 서비스로 자리 잡은 후, 동남아로 시작한 해외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버드의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은 창업을 한다고 합니다.
디지털 건강관리 영역에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합니다.
 
임상보다는 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면 용기 있게 도전해보길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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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현재 대표로 있는 메디스태프를 의료계의 대표 모바일 플랫폼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싶습니다.
 
의사들의 대표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후, 치과의사, 간호사용 플랫폼 출시를 통해 보건의료계를 건강하게 도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메디스태프를 통해 젊은 의사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여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정책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준비되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길이 아니었지만, 제가 걸어가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제 발걸음을 따라 여러 사람이 오다 보면, 그게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의사로서 임상뿐 아니라, 스타트업, 정책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후배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긍정적인 눈으로 다른 사회, 다른 집단과 소통하고 넓은 시야를 가지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환자를 위한 진료를 함에 있어 많은 불합리한 환경들이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자신을 태우는 뜨거운 분노가 아닌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저 역시 젊은 의사, 후배님들의 미래를 위해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기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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