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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꿈의지도' 대표 <김산환>

8/1/2019

 
집보다 텐트를 더 좋아하는 사람. '지금은 여행 중'이라는 멘트 하나만 남긴 채 홀연히 떠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 20년 간 여행전문기자와 작가로 활동하며 32개의 나라에서 천 일 넘게 머문 그는 오늘도 꿈꾼다.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들만 더 여행할 수 있겠다면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은 것'이라고... 꿈을 그리는 여행서 전문 출판사 <꿈의지도> 김산환 대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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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서 전문 출판사 '꿈의지도' 김산환 대표입니다.
 
예술대학 출신이신데 어떤 계기로 기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전공했습니다. 지금이야 문예창작학과가 대학마다 있지만, 당시엔 4년제 대학 가운데 유일했습니다. 이처럼 생소한 학과를 선택했지만, 딱히, ‘시인이 되겠다’라는 큰 포부는 없었습니다. 그저, ‘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입학하고 나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운동입니다.
 
당시에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모순을 직시하는 일과 같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순수문학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 모순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많은 문예창작과의 선후배들이 들려줬습니다. 자연스럽게 문학을 하는 것은 모순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그것을 가장 격렬하게 표출하는 방식은 학생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 휴학을 포함해 6년간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사이 문학은 점점 멀어졌고요. 단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운동권인 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학교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사회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어요.
 
‘무엇을 하며 살까?’ 이 고민을 품고 48일간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남을 이 산행을 하는 동안 찾아낸 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고한 이상도 다치지 않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찾자’라고 마음먹었고, 바로 ‘등산 잡지사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은 문학과 운동만큼 저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등산 잡지 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1년 반 뒤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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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분야가 많지만 다름 아닌 '여행 전문'기자로 15년간 활동하셨습니다. 현재도 아웃도어 전문 여행작가로 꾸준히 여행에 대해 탐문하고 계신데요. '여행'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등산잡지 (월간 ‘사람과 산’) 기자로 일하는 3년은 행복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산으로 취재를 가고, 산과 사람 이야기를 기사로 풀어내는 일도 좋았습니다. 마감 때마다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고, 잡지가 발매되면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었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받으면 저는 다시 산으로 향했습니다. 당시엔, 그렇게 그저 산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산은 산으로만 남는 게 아니었습니다. 산에는 좋은 계곡이 있고, 유서 깊은 사찰이 있고, 아름다운 숲이 있고, 그 품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등산잡지 기자는 등산로를 안내하는 게 주된 임무였지만, 산에 깃든 문화유산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또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산으로 취재 다니며, 하나둘씩 얻어낸 사진과 글이 모이자, 산과는 다른 이야깃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여행’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휴식이나 여행 같은 개념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몇 년 동안 산을 다니며 모은 이야기를<낯선 세상 속으로 행복한 여행 떠나기> 라는 책으로 펴내자 큰 반항이 일었습니다. 1998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부족한 책이지만, 도서를 제외하고, 여행 정보를 찾을 방법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라, 더욱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난 이후, 신문사의 레저 담당 기자로 이직했습니다.
 
과거, 신문사 기자들을 2~3년에 한 번씩 담당을 바꿉니다. 스포츠에서 경제, 사회, 문화부로 적을 옮기며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게 합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한 분야를 한 사람이 오래 맡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신문사에 그런 규정이 있었지만, 저는 레저(여행) 담당만 고집했습니다. 물론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여행이 좋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여행하는 삶. 이것은 어쩌면 제 몸 안의 DNA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흘리개 시절 마을 앞을 오가는 기차를 보며 가보지 못한 저 먼 곳을 동경했던 그 마음이 여행의 시작이란 것을, 여행은 바로 미지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라는 것을 훗날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모든 삶의 방향은 새로운 세상, 가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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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취재를 위해 많은 여행지를 방문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어느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여행 관련 강의를 하면 항상 듣는 질문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를 훑은 여행가는 아닙니다. 다만, 한 곳을 가더라도 깊게 가고, 반복해 가면서 체화시키는 스타일입니다. 그렇게 깊게 만난 곳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에서도 몇 곳을 꼽으라면 소련 몰락 후의 러시아, 백야와 함께했던 알래스카 자동차 여행, 지상 최고의 호화를 누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차 여행 등이 있습니다.
 
1999년, 아내와 함께 한 달간 러시아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서울로 유학 왔던 고려인 3세 나타샤와 함께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에서 만난 러시아는 소련 몰락 이후 고단했습니다. 러시아 최고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택시 운행을 부업으로 할 정도로 사는 게 힘겨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곱게 물들던 백야의 수즈달(러시아의 고도)에서 천 년 전의 러시아를 만났고, 뼛속까지 시리고 투명한 바이칼 호수에서는 시베리아의 영혼과 마주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일주일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닥터 지바고>를 읽으며 러시아의 황금기를 추억했습니다. 이 모든 여정에서 숱한 러시아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대부분은 친절하고 따뜻했습니다.
 
석 달 동안 홀로 자동차를 몰고 여행한 알래스카는, 여름에도 녹지 않는 빙하와 어디서도 튀어나오는 야생동물들로 즐거웠지만, 때로는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16시간 동안 운전을 하다 지친 나머지, 운전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헛헛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 모습을 누군가 밖에서 봤다면 분명히 실성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 힘든 여행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행복한 추억이 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탄 블루트레인 기차 여행은, 제 인생에서 가장 ‘초호화’ 여행으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프리토리아까지 24시간을 달려가는 이 기차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차입니다. 기찻삯이 무려 200만 원 가까이 하는데, 여기에는 숙박, 식사, 주류 등 모두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사나 객실 모두 5성급 호텔 이상의 클래스를 선보입니다. 바에서는 위스키와 보르도 특급 와인, 쿠바산 시가 등이 모두 무료입니다. 이 기차를 타고 아프리카 평원을 가로질러 가며 인생 최고의 사치를 경험했습니다. 여행기자로 산다는 것은 때로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여행하면서 수많은 나라도 다녔지만, 그만큼 수많은 사람도 만났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인연, 그리고 사람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주세요.
 
2004년, 알래스카 자동차 여행을 할 때, 스웨덴에서 온 마티에스라는 남성과 일주일간 동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숲이 벌목할 가치가 있는지를 재는 독특한 직업을 가졌습니다. 울창한 수림을 자랑하는 스웨덴 같은 북유럽에서나 가능한 직업입니다. 마티에스는 본래 모터사이클로 북미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래스카에 도착하는 순간 바이크가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바이크를 스웨덴으로 보낸 후 히치하이커가 되어 알래스카를 여행하다 저를 만난 것입니다. 이 친구는 귀국을 위해 앵커리지로 떠나기 전날 저녁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가 배탈이 나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히치하이크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자신의 생리적인 문제로 얻어 탄 차가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음식을 먹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날, 그는 배낭에 고이 담아두었던 가장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길에 섰습니다. 히치하이크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1999년, 바이칼을 여행할 때는, 두 명의 할머니 캠퍼를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교사, 다른 한 사람은 인형극장 대표였는데, 두 사람은 학교 동창입니다. 여름휴가를 맞아 바이칼호숫가로 캠핑을 온 것입니다. 허름한 텐트에서 환갑을 넘긴 할머니 두 분이 여유롭게 캠핑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할머니들의 삶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많지만, IMF를 겪던 그 시절, 할머니 둘이 떠나는 여행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할머니들과 밤늦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놀았습니다. 아리랑을 불러주고, 밤하늘의 별을 헤며, 밤늦도록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4년,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만난 북유럽에서 온 여학생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 명의 친구는, 대학을 선택하기 전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왔습니다. 그들은 석 달간 아르바이트해서 여행 경비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경비 가운데 일부를 가난한 원주민 아이들에게 줄 연필이나 노트 같은 선물을 사 왔습니다. 그들이 험한 산을 넘어 인디오 아이들을 찾아갈 때 동행을 했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대하며, 그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이들이 ‘천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어린 천사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따뜻합니다. 제가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을 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여행 중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물론, 때로 사기꾼이나 도둑을 만나는 등,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여행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일화입니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여행의 묘미를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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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주제로 강의도 많이 하십니다. 보통 어떤 내용의 강의이며 질의시간에는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받으시나요?
 
여행에 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아주 보편적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여행보다 가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전에 질문받은, 역시 ‘어디가 가장 좋았냐?’입니다.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답변 전, 우선 질문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왜냐면 가장 좋은 여행지는 사람과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의 여행 스타일이나 관심도, 재력을 포함한 능력 등이 모두 맞아야 그에게도 좋은 여행지입니다. 즉, 질문자가 어디가 좋았느냐고 묻는 것은 제가 좋아한 여행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국내 여행지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계절을 고려해서 답변하기도 합니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주는 감동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계절이라 하더라도, ‘어느 곳으로 가는가?’에 따라 여행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한겨울의 강원도와 제주도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여행지입니다. 또한, 삼사월의 강원도는 겨울 끝물로 볼 것 없는 여행지이지만, 남쪽은 꽃 피는 화사한 봄입니다. 그럼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까요? 여기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그때의 기분이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자신에게 최적화된 여행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행에 대해 강의를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출발하는 게 여행의 절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못 가거나 주저할 이유를 찾아보면 100가지도 넘습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두렵고, 언어가 안 되고, 동행이 없고… 이런 여행을 못 가는 이유에 발목을 잡히면 평생 여행을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출발을 하고 나면,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우려했던 일의 대부분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일단 떠나기만 하면, 그 여행은 절반은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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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활동하시다가 직접 <꿈의지도>라는 도서 출판을 창립하셨습니다. <꿈의지도>는 어떤 회사이며, 현재 대표로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여행 전문기자로만 활동하는 것!’ 이것은 제가 신문사 기자로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하나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다른 분야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기자 생활 마지막 순간에 결국 다른 분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것도 연예부로. 사실, 몇 달만 버티면 다시 여행 담당 기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연예부로 발령 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편집국장은 제가 얼마나 간절히 여행기자로 일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다른 부서로 발령 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를 그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출판사를 본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여행작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행지나, 여행 이야기를 가끔 한 권의 책으로 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큰 뜻 없이 기획한 캠핑장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 속된 말로 ‘대박’이 난 것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 ‘오토캠핑’ 열풍이 불면서 캠핑용품은 물론 캠핑 관련 도서까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책이 너무 잘 팔리자 마음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여행작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여행서를 만들어 파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쓰는 게 아닌, 작가들의 원고를 받아서 여행서를 펴내는 출판을 주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120여 권의 여행서를 펴냈습니다. 나름 여행서로 일가를 이룬 셈입니다. 특히, 휴대성 좋고, 작가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들어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만 콕 찍어 알려주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인 ‘홀리데이’ 시리즈를 42권까지 발행한 것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실, 해외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시장은 작은 출판사가 넘볼 수 없는, 메이저 출판사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런 시장에 도전장을 냈고,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의지도는 ‘사람과 여행을 잇는 징검다리’를 모토로 합니다. 앞으로도 여행서 한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서를 제외한 다른 분야도 출간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서는 꿈의지도가 전담하고, 자기계발이나 에세이 같은 다른 분야는 서브 브랜드를 통해서 풀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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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요즘 들어 관심을 두는 것은, ‘깊은 여행’입니다. ‘깊은 여행’은 여행이 점점 깊어져 사람의 본질, 혹은 어떤 한계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한계라는 것은 여행의 방식과 수단, 대상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과거의 여행이 보는 것, 대도시 위주, 크고 화려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면, 앞으로의 여행은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 작은 도시와 자연을 찾아가는 스타일로 옮겨 갈 것입니다. 또한, ‘깊은 여행’은 여행과 자신의 취미, 혹은 관심사를 연결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해서 여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흐름을 저는 깊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깊은 여행’이란 자전거, 백컨트리 스키, 백팩킹, 카누, 프리 다이빙 같은 좀 더 액티브하면서 아웃도어적인 것입니다. 몸으로 극렬하게 느끼면서 한계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독성이 강해서 단순한 관광이나 도심을 거니는 정도로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여행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여행은 경험을 통해 성숙되고, 점점 미지의 공간과 시간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잘 놀 줄 아는 사람’, ‘사람들에게 노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저에게 여행은 스스로 즐거운 일이지, 어떤 당위성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놀면서 즐기는 여행의 기쁨을 사람들이 다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게 저의 소명이며, 소망입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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