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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가/한복디자이너 <이서윤>

7/14/2019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을 사랑해서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복과 한국무용을 위해 달려온 '한국무용가 한복디자이너' 이서윤과 함께 한국 전통문화의 '전수'와 '계승'의 필요성 그리고 '지적재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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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한복디자이너 이서윤입니다.
한국무용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한국무용가 한복디자이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일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호칭하시든,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예체능 전공 특정상 진로를 어린 시절부터 정하게 됩니다.
부산예술고등학교 진학을 하셨는데 한국무용을 졸업하셨습니다. 언제 처음 '한국무용'에 입문하게 되셨나요?
 

저 같은 경우, 어릴 때부터 동네에 당산나무 밑 굿 보는걸 하염없이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길 가다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뜬금없이 ‘가야금병창을 하겠다’라고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요.
그러다 원장선생님의 권유로, 춤추는 남자(한국무용은 더더욱)가 없던 시절, 한량무(선비춤)를 배우게 되면서 무용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매일 걸어도, 밥을 먹어도, 무엇을 해도, 온통 생각은 춤에 빠져있는, 말 그대로, 춤에 ‘미쳐서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공부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라’라는 부모님의 반대로 잠시 춤을 그만둔 적이 있었지만, 매일매일 춤을 못 춰서 병나는 아들을 지켜보시던 부모님이 결국 포기하시고, 허락하신 것이 전공자로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전통무용과 한국음악을 정말 좋아했기에, 예술고 주최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었고, 부상으로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혜택을 받고, 한국무용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춤추면 손가락질받던 시절이라, 늘 놀림감이 됐던 기억은 중년이 된 지금도,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네요. 열정을 가지고 좋아했던 저의 일부분이었는데, 모두가 이해 못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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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예술고 졸업 후, 한양대 무용과에 진학 후, 한예종을 거쳐 예원예술대 무용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세 대학을 거쳐, 10년이 걸려 학사를 취득하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고 집안의 어려움 때문에 춤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보며 달린 기억이 많습니다. 하지만 춤도 열심히 배우고, 연마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한양대에서는 전공담당 교수님들의 수업은 진행되었으나, 제게 전통무용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가끔 문화재 이수자 분들을 모신 특강 등이 있었으나, 기본기는 교수님이나 젊은 강사 선생님들의 클래스 위주로 이루어졌으니까요.
 
그 와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이라는 곳에서, 최고의 명문, 문화재 이수자 선생님들과 수업하며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몰래 시험을 보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합격을 하면서 내적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학벌을 쟁취할 것인가?’, 아니면 ‘종합대학 학위는 포기하더라도, 내가 원하던 선생님들께 사사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요. 결국은 제가 갈구했던, 선생님들과의 인연을 맺고 싶은 마음에 한국종합예술대학교행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예종은 신생학교로 편입이 인정되지 않아서, 신입생으로 재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과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고, 생활고를 해소하느라 시간도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낮에 학과 수업을 마친 후, 저녁에는 한복을 만들게 되었고, 그 무렵 주변 지인들의 권유와 격려로 혜화동 근처에 7평의 작은 공간을 임대하여 시작했던 ‘이서윤 한복’은, 지금의 한복 인생 20년을 걸어오게 한 지평선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일을 병행하면서, 또한 가끔은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기에, 개인적 삶이 너무 어려워졌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점점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예술대학의 특성상 공연이 자주 있었고, 공연 몇 개월 전부터 공연 연습으로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연습을 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세 가지일 병행해야 하는 저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연습에 불참하게 될 때마다, 동기들과 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에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한예종의 학업을 포기하였습니다. 이후, 모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예원예술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었고, 10년 만에 학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군 면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상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남들과는 다르게 평범하게 군 생활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호흡기 문제로 인해 훈련소의 입소와 퇴소를 두세 차례 반복한 후,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춤은 언제나 제가 사랑했고 어디서나 함께하기에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퇴근 후, 아르바이트와 무용연습이 가능했기에 춤을 추는데 시간상의 어려움 역시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예술가는 배고프고 간절함이 있어야 정도를 갈 수 있다’라는 말씀은 늘 저에게는 기운을 줬고, 훗날의 힘든 고비마다 되뇌는 주문처럼 다가왔었습니다. 

10년이 걸려 학사를 취득한 후, 11년 만에, 무용이나 디자인 계열이 아닌, 한국음악학과의 석사과정에 입학하셨습니다. 전의 경력, 그리고 앞으로의 경력에도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한국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공이 무용과가 아닌 이유는 몇 가지가 됩니다.
 
일단 저는 한국무용은 생음악의 경우 동작과 시선 등, 음악과 동화되어야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용 동작이 나올 수 있는 특성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음악과 무용은 박자, 음감, 음색 등,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살부터 무용을 연마해온 제게, 한국무용 석사과정은 대학선택의 폭이 넓지 않으며, 대신, 한국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석사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학교의 지인들도 많으셨고, 불교적 의식이나 부처님의 철학적인 의미에 관심이 많았기에, ‘한국음악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원 수업을 통해 음악적, 특히, ‘불교 무용학’적 학습이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음악과의 경험적 학업은 춤도, 한복에도 몰랐던 부분에서 다각적 방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전공에만 치중하기보다, 더 넓은 학문의 예술적 응용은, 미래적인 디자인의 초석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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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디자이너'로서 KBS 드라마 '황진이', '성균관 스캔들', SBS '옥탑방의 왕세자', '별에서 온 그대' 등 한복 의상이 돋보였던 작품의 디자이너와 제작가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고 계십니다. 20여 년 전에 전통한복을 시작하면서, 원래 하던 한국무용을 그만두고 한복디자인으로 직업을 전향하셨는데, 주변의 반응과 그에 따른 어떤 오해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제가 어린 시절은 보통 어머님들이 집안에서 바느질과 재봉을 하시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하고 어머니를 도와서 바느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학창시절, 고등학교를 예술고로 진학하고 나서,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를 못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부모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살풀이 수건, 버선, 연습복 등을 만들어서 동기들에게 약간의 이윤만 남기고 용돈 벌이를 하였습니다.

꿈은 ‘한국무용가’였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제약이 있었기에, 꾸준히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남자무용수로서 어느 단체에 들어가기에는 키가 작았고, 혼자서 아무런 도움 없이, 지속적인 학습의 대가로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 대체 기간에는 시간적 제한으로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도 절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공익요원을 하면서 늦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행복했고, 그 일로 외로움도 보람도 느꼈습니다. 저 자신의 적성을 이제야 찾아가는 순간이었달까요? 집에서 재봉하거나, 디자인 작업을 하기엔 여건이 되지 않아, 작업실 겸 가게를 시작하게 된 것이 1999년입니다.
 
많은 반대 속에서도 한순간 직업의 전향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직업 전향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계속 무용만을 배우며, 생활하기에는 수업료도 충당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모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예선 탈락을 했습니다. 승승장구만 하다가 어린 나이에 미끄럼을 크게 탄 이후, 오래도록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대회의 경험은, ‘언제까지 무용수만으로 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해답이 된, 한복디자이너로 전향을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용으로 저의 재기와 성공을 기대하는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교차하는 시간이었기에, ‘춤이나 열심히 하지 무슨 옷 장사냐’며 다들 수군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제가 ‘춤을 완전히 포기했다’고는 생각지 않으셨던 듯합니다.
 
무용가로서 활동(개인 공연 등)을 안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무대에 오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기에, 스스로는 ‘완전한 전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무용을 할 수 없을 만큼 한복을 디자인하는 일에 몰두했고, 이름 없는 저 자신이 너무 애처로워, 그렇게 간절하던 춤도 잊을 만큼 시간에 묻혀 살았습니다.
 
언제든 공연이라도 관람하면 밤새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운 순간들도 간간이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이런 갈증들이 모여, 제가 다시 일어나 무용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복디자인을 하면서도 틈틈이 춤사위를 틀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회출전을 하였고, 수상의 영광도 누립니다.
 
처음 한복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거의 10여 년은 무용수로서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무용에만 목숨을 걸었던 제게, 10여 년 동안 무용과의 단절은, 춤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6~7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이조 선생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고, 공연무대에 서면서부터 다시 정식 무용수로서의 활동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제가 노력했다면 충분히 ‘한복디자이너인 한국무용가 이서윤’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인지도도 없고, 무용가로서의 명성, 둘 다 없는, 아무것도 아닌 제게 누가 관심이나 격려를 해줄 수 있었을까요?
 
현실에서 두 가지 직업을 함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무용을 택하면 춤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 다른 동료 무용수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며, 제자를 육성해야 합니다.
한복을 택하면 가게 운영, 손님 응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 맞는 디자인을 해야 하며, 그에 걸맞은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고…. 일은 끊임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하루 중 어떻게 나누어서 해야 할까요?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할 수 있을까요?
 
저도 평생 지고 갈 두 직업의 가늠과 무용수로서의 복귀 시기 등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었습니다.
‘두 가지 직업을 누가 봐도 훌륭히 소화하고 있는구나’라고 생각이 들 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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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디자이너로 직업을 전향하셨지만, 또 작년 이맘때,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15호 이매방제 승무'를 이수 받으신 전수자가 되셨습니다. 한국무용가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인데, 한복디자이너로서의 직업의 갈림길에서 고민도 많으실 법합니다.
 
한복디자인 하면서 춤의 꿈을 펼쳐가는 시간에, 좋은 무대에도 설 수 있었지만, 이수자만이 설 수가 있는 무대가 따로 있었습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이미 돌아가신 故 이매방 선생님에게는 배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95년도 인연을 맺었던, 법우스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법우스님은 대전시 이매방제 무형문화재 15호 승무 보유자이십니다.
​故 이매방 선생님께 이수하시고, 현재 승무를 공부하시며, 꾸준히 연구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수 받는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도제식 교육’, 즉,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입니다. 무형문화재는 한 민족의 전통과 얼, 정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척도입니다.
 
한국무용은 오래전부터 전수가 돼 지금까지 왔습니다.
어느 나라 전통춤도 마찬가지이지만, 전통무용을 할 때는, 그 나라 전통의상을 입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한복’입니다. 물론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이미 오랜 전통이 된 한복과 한국무용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언제나 함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또한 무형문화재의 이수자로서 훗날, 무용은 물론 한복 역시, 후세에게 전수하고, 미래에도 이어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라면 모방과 창작 사이에서 많은 갈등, 그리고 또 다른 '창작활동'을 하게 됩니다. 어느 것을 '창작'이라고 부르고, 어디까지를 '모방'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많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이 처음 접하는 일이 ‘모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디자인이 만들어져서, 시판되면, ‘창작’과는 별개인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창작은 쉽지 않지만, 모방이나 카피는 너무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을 계승하고, 창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의 지적 재산을 지켜주고, 존중하는 노력은 꼭 필요합니다.

 
한복디자이너로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문제점은 끊임없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 중국의 치파오, 한국의 한복 등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만 입는 전통의상이 있는데요, 각 나라의 의상에는 그 나라만의 문화와 정서 등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적 재산입니다. 이에 혹자는 '전통의상이니 누구나 패턴, 문양 등을 도용하여 쓸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문제는 전통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오는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란 물결처럼 한 시기를 팽배하게 되면, 전통이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해외명품 등은 각각 자기만의 패턴이나 문양 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정 패턴이나 문양 등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겠으나 똑같이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겠지요. 음악의 표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표절 시비는 과거에도 있었고, 언제나 시끄럽습니다. ‘자신의 것’이라며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패턴이나 문양 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누군가가 이미 창작해낸 패턴이나 문양을 자기 디자인에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되면 전통의 계승이나 발전은 아예 없어지거나, 더디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옛것이 미래지향적인 이유, 유행이 돌고 도는 이유를 들어, 디자인은 창조적 이야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회자 되지만, 그것은 새롭게 회자 되는 것이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똑같이 회자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철학과 이야기가 없다면 또한 후자처럼 ‘발전 없는‘ 똑같은 회자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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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단기적인 계획은 두 달여 후로 계획된 저희 샵의 이전입니다.

혜화동에서 4년, 안국동에서 10년 동안 샵을 운영한 이후,
현재 샵은 광화문은 2층 창문 너머, 경복궁의 담이 보이는 곳에 4년 전, 개점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수많은 관광객과 정체성 잃은 한복대여점의 난입, 매일 벌어지는 각종 데모와 집회, 시위 등으로 지금은 개점 시기의 아름다운 매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수동 서울숲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복디자인을 처음 시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동안,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20여 년의 세월 간 디자이너 생활을 하다 보니, ’최고‘보다는 ’전수’와 ’계승’이라는 미래지향적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복이 상용화되지 않아, 재료나, 원단을 직접 제작하는 장인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복업계에서 심각할 정도로 난제에 빠져있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전통문화는 입고, 쓰고, 먹지 않으면, 점점 사라질 것이며, 다시 대중들에게 그 명성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통문화는 지키고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한복은 한국의 옷으로 이미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의 ’한국어학과‘, ’한국음악과‘, ’한국무용학과‘ 등이 존재하듯, 머지않은 미래에 ’한복학과‘가 개설됨으로, 누군가는 다른 전통문화처럼 ’전수‘하고, ’계승‘하고 그 계보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김묘선, 윤중강, 이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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