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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니스트 <이석준>

6/26/2019

 
호른 연주가로서는, 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최고의 목표로, 호른 지도자로서는 ‘정직함’과 ‘성실함’을 최고로 여긴다는, 호르니스트 이석준 교수. 지난 35여 년간 다사다난했던, 하지만 '호른'과 함께였기에 든든하고, 행복했던, 이석준 교수의 '호른 인생'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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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호른 연주가 이석준입니다.

 
초등학교 때, 호른을 시작하셨습니다. 음악 배경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의 금관 악기를 책에서만 보는 나이인데 어떻게 입문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의 사립초등학교인 영훈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특별활동으로 관악부가 있었습니다.
 
아침 조회 시간에 형, 누나들이 예쁜 단복을 입고 연주하는 게 근사해 보였는데 3학년 때 단원 모집을 하더라고요. 지원했는데 처음에 트럼펫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코치 선생님께서 저한테는 ‘유포니움’이라는 악기가 어울릴 거 같다고 권유하셔서, 아무것도 모르고 ‘유포니움’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월간음악’이라는 잡지사에서 하는 콩쿨에 유포니움을 들고 나갔는데 1등을 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故 신홍균 선생님(당시 KBS교향악단 수석)이셨는데 ‘악기 부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음악 전공을 하고 싶다면 유포니움은 클래식에 잘 쓰이지 않는 악기니, 호른을 배우면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악기 시작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집안에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립초등학교에 진학하여, 친척 어르신들의 반대도 많았었는데, 더욱이 음악을 한다니 난리가 났었습니다.
 
특히 아버님은 과거, 운동하셨었는데, 제가 당신의 뒤를 이어 운동선수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음악에 대한 열망이 깊었던 저와 제 어머님의 뜻을 꺾지 못했고, 저 또한 호른이라는 악기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와 무조건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중고 악기가 아주 싼 값에 나와 시작 할 수 있게 되었고, 신홍균 선생님께서 저의 집안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레슨비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정 형편이 워낙 어려웠어서,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음악을 중도에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호른이란 악기는 기네스북에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로 등재됐을 만큼, 몹시 어려운 악기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불기에 당연히 힘들죠. 그런데도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호흡이 짧은 걸 제외하고는 이상하리만치 악기가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또래보다 체격이 좋았던 것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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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에게는 엘리트 코스라는 예원학교-서울예고-서울대 코스를 밟고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유학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 군대에 안 갔었습니다.
그 당시, 동아콩쿨에서 1등을 하면 군대를 면제받았는데, 2학년 때 나갔다가 3등을 했습니다.
3학년 돼서, 캠프도 다니고, 오케스트라 객원으로도 참가하고, 연애도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니 군대 갈 시기를 놓친 것이죠.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얼마 안 남겨두고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졌습니다.
하나는 그 당시 학교 관악합주 수업을 하시던 김종덕 선생님께서 ‘해병대 군악대 장교’ 자리가 났다고 추천을 해 주셨는데, ‘입대하면 관악합주 지휘도 할 수 있으니, 경력을 쌓아 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었습니다.
 
또 다른 선택 중 하나는, 당시 서울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시던 임헌정 선생님의 권유였는데, 그 당시 선생님께서 부천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겸직을 하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단 부천시향 오디션이 있으니 지원해보고, 만약 합격하면, 이듬해 동아콩쿨에 한 번 더 도전해서 군대 면제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셨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선택을 놓고, 꽤 오랜 시간 갈등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임헌정 선생님의 권유를 택했고, 동아콩쿨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획대로 잘 진행되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신 김영률 교수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에서의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하시고 귀국하신 선생님께서는 그 당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게 큰 경험을 하게 해 주셨는데, 그것은 일본에서 열린 International Horn Society (IHS) 캠프의 참가였습니다.
 
매년 미국과 유럽에서 번갈아서 열리던 IHS 캠프가, 처음 아시아에서, 그것도 일본에서 열리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가깝기도 하고, 캠프 참가 비용도 저렴한 데다가, 막상 가보니 전 세계의 저명한 호른 연주자들이 일주일 동안 매일 매일 연주회를 하는데,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한테는 엄청난 신세계였고, 정말 겸손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호른 연주자 중 특히 영국의 ‘Frank Lloyd’라는 연주자의 리사이틀을 접하고, 그분께 꼭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알아보니 그 당시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길드 홀 교수를 겸직하고 계셨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제 형편으로는 도저히 영국에 유학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포기하고, 몇 년 더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도 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던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대학원 입학생을 발탁하는 시험이 처음 생겼습니다.
 
지원해서 합격했는데, 직장에서 갈등도 생기고, 여러 가지 여건상 다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유학에 대한 갈증이 커저갈 때 쯤, 그나마 당시 학비가 저렴하면서 좋은 교수법을 가진 선생님들이 많은 독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원서를 내야 해서, 마침 미리 독일 현지에서 유학 중인 친구에게 부탁했고, 이 친구가 쾰른, 에센, 베를린. 이렇게 세 학교에 지원서를 넣어주었는데, 베를린은 원서가 늦게 도착해 다시 돌아왔고, 쾰른은 그해 졸업생이 없어서 호른 학생의 입학 정원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결국, 제겐 에센국립음대 밖에 선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에센국립음대에는 ’헤르만 바우만’이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주가가 교수로 계셨지만, 쾰른음대에는 ’팬젤‘이라는 교수님의 제자들이 취직도 잘하고, 교수법이 좋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에센국립음대에 합격하더라도, 이미 마음속에는 편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보기 이틀 전에 독일에 도착해서, 친구를 통해 바우만 선생님 연락처를 찾아보던 중, 바우만 선생님께서 은퇴하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국인 선배로부터 이번 학기부터 교수가 바뀐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학교로 찾아가 호른 교수실에 찾아갔습니다. 마침 레슨 중이셔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끝날 즈음 노크하고 문을 열었는데, 제가 처음 유학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던 IHS에서 만난, Frank Lloyd 선생님이 계신 광경에 전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제 소개를 했고, 이번 시험에 등록해서 시험을 보기 전에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시험이 이틀밖에 안 남았고, 전부터 시험을 위해 개인지도를 받은 다른 학생이 있다‘, ’미안하다. 하지만 시험을 잘 보면 발탁할 수 있으니 행운을 빈다‘고 하셨습니다. 이틀 뒤, 시험이 끝나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제게 악수를 청하시며, 합격 축하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4년이 채 못 되는 유학 생활 동안 선생님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부모님처럼 챙겨주셨고, 지금도 선생님께서는 제가 ’수많은 제자 중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주신다고 듣고 있습니다. Frank Lloyd 선생님은 IHS 회장도 두 번이나 연임하셨고, 연주가 너무 많으셔서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제가 연주를 위해 베를린을 방문할 때마다, 멀리서 직접 연주도 보러 와주시고,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특별히 잘 대해 주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유학하는 동안 로이드 선생님의 배려로 디플로마 과정이 끝나고 2년이 걸리는 ‘Konzert Examen’(최고연주자) 과정을 1년 반 만에 졸업 할 수 있었고, 정식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사립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을 맡아, 연주 수당도 꽤 많이 받으면서, 유학 생활도 나름 여유롭게 지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악기를 존경하는 선생님과 공부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시기 사랑하는 첫째 아들도 태어났고, 무엇보다 저의 집사람도 음악을 했는데 같이 공부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주위의 음악하는 선후배들과 주말에 축구시합도 하고, 야외에서 고기 구우며 가족 단위의 모임도 하는 등, 제 인생에 있어서 유학 생활은 손에 꼽을 만큼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금관 악기 분야의 대가들이 많고 특히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있는 도시는 금관 악기 수준이 높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쫓아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지만, 좋은 오케스트라 연주가들의 연주나 마스터 클래스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그중 독일은 금관 악기를 전공하기에 ‘적합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최고’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합니다.
세계적으로 미국을 제외하고 음악가들에게 가장 대우를 잘해주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음대가 있고 가장 좋은 선생님들이 많으며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많습니다.
그만큼 일을 하거나 배움에 있어서 기회가 많다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언어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유학을 가서 처음에 선생님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께 저의 유학 생활 초반에 대해 ’언어소통이 불가한데 어떻게 레슨을 진행했었냐?’라고 물어보면, ‘석준은 다른 학생들보다 레슨시간이 길었어, 시범을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 불어야 해서 시간이 두 배로 걸렸지’라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언어라는 건 대화의 의미도 있지만, 문화나 생활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력이 높아지려면 많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줄 알아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중요한 만큼 악기 실력이나 선생님과의 유대관계도 중요합니다.
 
입시에 도전하고자 하는 학교나 배우고자 하는 선생님과 자신의 스타일이 다르면, 시험에 실패하기 쉽고,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을 잘 이해 못 하면 서로 고생합니다.

외국 교수님 대부분은 오디션 전에, 혹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따라오는지 아닌지, 개인지도를 통해 확인하는 절차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시험에서 잘 하는 게 매우 중요하지만, 가능성을 보고 뽑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학하던 때, 제 뒤로 들어온 나이 어린 외국 학생 중, ‘저 학생은 어떻게 들어왔을까?’ 했던 학생들이 졸업해서 오케스트라에 취직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교수 본인들이 뽑고 싶은 학생이 가능성이 있는데, 조금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6개월 동안 개인적인 교습 과정을 거친 후, 입학시키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런 시간까지 절약하기를 원한다면, 미리 유학을 원하는 학교의 소속 교수나 강사들의 성향을 빨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부족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교수가 학교의 영역을 떠나, 개인지도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영재원이라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재주 있는 어린 학생들을 발굴하여, 지도해, 대학에 들어와 연주자로서의 경험을 일찍 시작하게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교수의 ‘합법적인 개인레슨’입니다.
수업료도 나라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면제입니다.
 
오랫동안 가르쳐서인지 학생과 교수 간의 신뢰도나 유대관계도 좋고, 스타일에 대한 혼돈이 오지 않으니 연습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고, 특히 요즘 졸업생들은 굳이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취직을 잘하고, 국제 콩쿨 우승도 자주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까지 다른 선생님께 배우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다른 선생님을 만나 스타일을 바꾸려고 하니, 혼돈도 오고, 적응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취직 준비도 해야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경우에는 유학을 가야 하는데, 또 다른 스타일의 선생님을 만나면 고생의 연장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실력이 뛰어난 양심적인 젊은 교수들이 많으십니다.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소속된 학교에서만 고립되어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라도 개인지도를 허락함으로써, 어려서부터 재주 있는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단체인‘ TIMF앙상블’의 연주자 겸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많은 부분 현대음악에 관한 연주를 하고 있는데, 기법상 많은 부분이 옛날 악기 부는 방식과 다른 게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 관한 연구와 학생들과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윤이상 선생님의 곡을 많이 연주해봤는데, 서양악기의 연주기법에 한국적인 색채를 씌우는 작업이 다른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다르고, 특이한 점이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유학을 끝내고 2001년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교향악단과의 협연, 리사이틀, 독주회의 무대를 올랐습니다. 그동안 연주한 작품 중 가장 애착 가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슈만의 ‘Adagio and Allegro’입니다.
많은 분이 원래 첼로를 위한 곡이라고 알고 계신데, 이 작품은 원래 호른을 위해 쓰인 곡이고, 첼로, 비올라, 오보에 등 많은 다른 악기들에 의해 연주되기도 합니다.
 
아주 서정적인 느린 부분과 격렬하면서 화려한 빠른 부분이 대비를 이루는 어려운 곡입니다.
호른을 위해 쓰였지만 호른으로 연주하기가 가장 어려운 곡입니다.
 
Christoph Förster라는 작곡자의 협주곡 1번도 좋아하는데, 이 곡은 바로크 스타일의 곡으로 고음의 화려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곡입니다.
 
일반적으로는 W.A.Mozart의 호른 콘체르토 4곡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궁정 지휘자 시절, 친구이자 수석 호른 연주가를 위해 쓴 곡으로, 원래 사냥 악기였던 호른의 역할을 잘 반영한 곡이기도 하고, 연주자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비교하여 감상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모차르트 음반에서는 ‘Radek Baborák’라는 연주자와 ‘Radovan Vlatković‘이라는 두 분의 연주를 추천해 드립니다. 아주 깔끔하면서도 호른의 부드러움과 포용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호른의 부드러운 부분을 좋아하면서도 호른도 다른 악기처럼 화려한 면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호른 곡 중 어려운 곡을 연주하기를 좋아하는데, G.Rossini의 ’Prelude, Theme and variation‘이나 P.M.Davis의 ’Sea Eagle’이라는 곡을 즐겨 연주합니다.

또한, 다른 악기 곡을 편곡해서 연주하기도 하는데, Arban의 ‘Carnival of Venice’나 Allan Borodin의 소품들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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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활동 중에도 눈에 띄는 것은 지난달, 해군 군악대의 '명예 군악대장'으로 위촉되신 것인데요?
 
7~8년 전, 선임이신 오광호 명예 교수님 재임 시절, 해군 군악대와 당시 제가 지휘자로 활동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윈드 오케스트라가 합동연주를 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한예종 졸업생 중 몇몇이 직업 군인으로 해군 군악대 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현재, 해군 군악대 교관이신 김연근 교수님은, 전공은 다르지만, 오랜 시간 연주자로서, 또한 제자로서,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또한, 제가 해군 군악대 행사에 몇 번 초대되어 지휘도 하고, 대원들과 친분도 쌓으면서, 좋은 이미지를 축적해 온 것이 계기가 되어, ‘명예 군악대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에 위촉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명예 군악대장’으로 위촉된 지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아, 그 사이 특별한 행사는 없었지만, 앞으로 재직 중인 학교와 군악대의 합동연주, 해군 군악대 위문연주 등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부임 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이화여대, 상명대, 경원대, 동덕여대에 출강하며 제자 양성에 힘쓰셨습니다. 만났던 제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나요? 또한, 제자들에게 예술가의 자질로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만난 모든 제자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고, 특별하지만, 제가 처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교수로 정식 부임했을 때 발탁했던 세 명의 남학생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세 남학생은 현재 각각 인천시립교향악단 수석, 청주시립교향악단 수석, 그리고 독일 빌레펠트 오케스트라의 수석을 역임하고, 대전시립교향악단 수석으로 스카우트 되어, 다음 달부터 활동 예정입니다.
 
같은 학년의 동기 세 명이 각각 다른 오케스트라의 리더가 된 것이죠.
이 친구들도 앞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텐데 기대가 아주 큽니다.
 
제가 스물세 살에 만났던 고3 학생도, 지금까지 저와 같이 음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랑 다섯 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저를 아버지처럼, 형처럼, 정말 가족으로 여기고, 현재 수원시립교향악단 수석으로 활동 중입니다.
 
상명대 출강 당시 가르쳤던 두 제자는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거취를 옮기자, 한예종 대학원까지 따라와, 한 친구는 동아콩쿨에 입상하여 춘천시립교향악단 수석이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KBS교향악단 단원으로 입단하였습니다. 상명대 개교이래 처음이라더군요.
 
안타까운 친구들도 있습니다.
독일에 유학 가서 장래가 촉망되지만, 군대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국해 있는 제자들도 있는데, 빨리 군 복무 마치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제자가 유학도 가 있고, 국내외에서 연주자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너무 성과 좋은 제자들만 나열한 것 같지만, 저의 모든 훌륭한 제자들이 이렇게 활동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예술가로서의 정직함과 성실함, 그리고 순수한 봉사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고, 가르침을 원하는 자들에게는 ‘정직함’과 ‘성실함’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력과 인성이 바탕이 된 연주자가로서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면, 물질적인 면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욕심내지 않고, 음악가가 지녀야 할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예술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교수님께 35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호른'은 어떤 의미인가요?
 
호른은 제 ‘신체의 일부분’ 같습니다.
없어지거나 버릴 수 있는 물건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제 감정을 고스란히 다 받아주는 항상 ‘고마운 존재’입니다.
호른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고, 제가 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게 해 줬으니, 이젠 제가 존중해줘야 할 대상이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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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솔리스트 연주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음반을 갖고 싶어 합니다.
참 어려운 작업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듭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 중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여 음반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금전적 걱정이 없는 연주자도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저는 더 나이가 들고, 실력이 줄기 전,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개인적인 음반 두 장 정도 발매하고 싶습니다.
 
교수로서 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니, 좋은 제자들을 꾸준히 양성하는 것도 제가 할 본분 중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선, 후배, 동료 음악가분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한, 그리고 실력 좋은 음악가이자 교육자’라는 평을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에게, ’호른’이라는 악기를 통해 감동과 즐거움을 드리는 연주가로 남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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