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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니제일교회 담임목사 <안성복>

7/22/2019

 
목회자의 소명이란 어떤 것일까? 미주 장신대학교 교수이자 다우니제일교회에서 목회를 맡고 있는 안성복 목사와 함께, 그가 걸어온 목회자의 길, 목사로서의 소신을 비롯해, 국내 사회의 흔들리는 기독교의 입지 속 지켜야 할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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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 다우니 시에 위치한 다우니 제일교회를 섬기고 있는 안성복 목사입니다.
 

‘부르심’이라고 표현할까요? 언제, 어떤 계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목회자로서의 진로를 택하게 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이 ‘목사’였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딸 셋을 낳은 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라는 서원 기도 후, 제가 태어났습니다.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목회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제 눈에 설교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 어렸을 적, 친구들을 모아두고 그 앞에서 설교하는 ‘목사 놀이’를 할 정도로 목회를 좋아했었어요.
 
물론, 제 나름대로 방황했던 청소년기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결국 신학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대학 재학 중에도 ‘이 길이 정말 내가 가야 하는 길인가?’라는 더 많은 갈등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것은, 군대를 다녀온 직후입니다. ‘신학대학에 복학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깊어져 갈 당시, 아버지의 권유로 기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날,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분명한 소명감’을 가지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 번도 망설이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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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목사가 된 후에도, 모든 직장생활이 그렇듯, 언제나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말 못 할 힘든 고충도 있으셨을 법합니다.
 
원하는 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목사가 된 것은 제게 언제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남들에게 말 못 할 힘든 고충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감사를 잊게 하지는 못합니다.
 
언젠가 꿈속에서 제가 아주 큰 부자가 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속의 제겐 목회지가 없었습니다. 설교할 수 없고, 섬길 교회가 없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꿈을 깨고 나서, 그것이 꿈인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주보에 ‘목사 안성복’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지요. 2017년, 처음 미국에 유학을 와서 공부할 때, 당시 환율이 1700원 정도까지 올라가, 유학생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듬해, 교회의 교육 목사로 시무하게 되어, 한 달에 600불(현 환율 한화 약 70만 원)을 받으며 생활할 때,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미국 땅에 내가 섬길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정말 어려운 시절에 저의 큰 누님께서 제게 보내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라는 구절이었는데요. 이 말씀은 언제나 제게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대한 자세가 다른 것이지요. 저는 어려움 또한, ‘제게 주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목회학 박사이시지만 현재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수 중이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왔습니다. 2010년,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요. 학교에서 제가 연구한 학문은 목회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설교는 심리학, 교육학, 상담학, 과학, 철학, 미술, 음악 등 우리 인간의 다양한 분야를 통한 성경적 접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위과정을 마친 지 7년이 지났을 때, 약간은 무뎌진 저 자신을 발견하고, 제가 자극되며, 발전될 만한 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독학하고, 그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나만의 만족’보다 학문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위과정 이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윌리엄캐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수학하고 있는데,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언어학 관련 분야입니다. 언어학의 ‘화용론’ 중에서도 ‘적합성 이론’을 중심으로 ‘적합성 이론을 중심으로 한 성서 해석과 설교’가 제가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저의 연구가 앞으로 펼치게 될 설교뿐 아니라 많은 분의 설교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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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 담임으로서 목회 활동을 하시는 것 외에도 미주장신대학교 교수로서 강단에 서고 계십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교육전도사 시절, 여름 성경학교 교사 교육 강사로 오신 어떤 목사님께서, ‘교회는 어제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내일이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그 말씀은 제게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는 정체에서 쇠퇴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제 지인 중 한 목사님께서는, ‘교회의 혹한기를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교회의 영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성 회복’이 곧 ‘교회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은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제자도’입니다.
 
목회자들은 먼저 이 ‘제자도’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제자도’가 없는 설교는 그 말이 유창할지언정, ‘능력’이 없습니다. 혹여 세상에 보이는 ‘수적인 능력’은 나타낼지라도, 결국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를 내지 못한 무화과나무’일 뿐입니다. 그 ‘무화과’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말라버렸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부인의 삶으로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회적 몇몇 유명인사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기독교 전체의 위상과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부심을 지니기 위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까요?
 
사회적 논쟁거리를 일으키며 소위 교회를 ‘욕되게’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외딴 농촌에서, 외진 섬에서, 나이 드신 어른들을 섬기시는, 또한 사회적 차별대우를 당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을 섬기시는 귀한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를 세습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도 내지 않고 말없이 떠나시는 분도 계십니다. 성도를 성추행하는 도저히 목사라고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청량리 미아리에서 살아가는 상처받은 여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해 가고 계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에 머리 숙여 죄송하지만, 단면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 또한 성숙한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 가운데 윤동주의 ‘서시’가 있습니다. ‘서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끊임없이 묵상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길’입니다.
 
한 아이가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승리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용기란 무엇이지요?’ 아들은 아버지가 전쟁 무용담을 이야기하다가, ‘이런 것이 용기다!”라고 말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한 야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피어있는 꽃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용기란 바로 저런 것이다. 누가 돌아보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꽃’을 피우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향기’를 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용기다!‘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독교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고서 말이지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잘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가 보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꽃’을 피우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바꾸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간다면, 분명 교회는 다시 세상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부심은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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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복음성가 중.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마음에 와닿는 찬양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어 그를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저도 내일 일은 모릅니다. 그저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분명한 것 하나는, 제 길을 함께 나아갈 그 '누군가'의 존재 입니다.
 
저는 제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제 손을 붙들고 가시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지켜주실 것을 믿고 갑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목사로서의 ‘야망’이 아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vec G'에서 부족한 제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시는 모든 독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Avec G’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촉매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안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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