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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쿠잉비 대표 <김학수>6/3/2019 ‘천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맛집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파워블로거’보다 더 파워 넘치는 블로거! 마케터로서의 열정을 끊임없이 불사르는 ㈜ 쿠잉비 대표이사 김학수와의 인터뷰! 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모바일 광고유통 융합플랫폼 레드QR을 런칭하고 있는 주식회사 쿠잉비 대표이사 김학수입니다. 저는 1982년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 2학년 마치고 휴학, 27사단 이기자부대 수색대 군복무를 하던 중 자신의 선택이 향후 인생항로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달음을 얻고 제대했습니다. 나의 선택으로 복학 후 경영학과 수강을 위주로 대학졸업, 해태제과 금강제화를 거치며 마케팅 실무에서 팀장까지 역임한 후, 지금껏 순수 열정의 마케터로 지내면서 매일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소상공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하는 충청도 보령사람 김학수입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 시절, 금오공고 입학을 원했지만 부모님의 의지로 남강고에 진학을 하시고 서울대에 진학을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게 미래 진로의 '신의 한 수'가 아니었었을까 싶은데요. 학창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난한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저는 학비는 물론 생활비가 전혀 필요없다는 금오공고에 추천을 받아서 진학하려 했지만, 아들들은 서울대에 가야한다는 아버지의 만류로 일반 고등학교인 신림동 소재 남강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다행히 고교입학 자격시험인 연합고사 성적이 좋아서 남강고 특별반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다니기 힘들었던 저에게 양질의 국영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선택으로 다니게 된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된 저는 열심히 공부했고, 점점 서울대 문턱에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저는 82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서 뜻하지 않은 낮은 성적으로 중앙대의대와 서울농대 입학원서를 두고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의대를 원하던 저는 부모님의 권유와 집안형편으로 인해 서울농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전공학이라는 화두가 심화되던 시점이라서, 의대 못지않게 유전공학도 미래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만족을 이유로 식품공학을 전공하면 될 거라고 위안하면서 말이죠. 1학년 교양과목을 관악캠퍼스에서 마치고 2학년부터 식품공학과에 진학, 공부를 하던 중 거의 모든 커리큘럼이 화학으로 점철된 학교생활에 싫증을 느끼던 중 한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짝사랑으로 끝난 2학년 생활을 마치고 휴학,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품공학과란 이유로 취사병과를 지목받은 저는 부산기술병과학교에서 취사병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화천 27사단 이기자부대 수색대 취사병으로 군복무를 시작했습니다. 서울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집단, 수색대 전우들과 생활하면서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팔도에서 모인 전우들의 삶과 애환을 통해, “나의 작은 선택이 인생을 이렇게도 많이 변하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품은 채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복학하니 ‘정말 내가 원하던 유전공학을 통해 세상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식품공학과 공부가 아닌 경영학과 과목 수강신청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의 제가 좋아하는 마케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식품공학과를 선택했던 것은 유전공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공부를 하려면 석사 박사를 마쳐야 비로소 작은 분야의 유전공학적인 일을 할 수 있는데 가정형편상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제일제당(지금의 CJ그룹) 인턴사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마케팅업무를 할 수 있는 해태제과를 선택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해태제과에서는 껌마케팅 업무를 시작했고, 무설탕껌의 시장을 연 덴티큐를 기획 한국능률협회 본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군에서 배운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작은 성공의 시작이란 것을 깨닫게 된 첫 번째 쾌거입니다. 창업 꿈나무의 알찬 도전이었던 (주)백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가 처참히 망한 후, 현재는 쿠잉비 CEO 그리고 최근 레드QR을 런칭하셨습니다. 해태제과에서 마케터로서 승승장구 하던 중, 그룹사 전출을 통해 지금은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당시에는 무선통신망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해태텔레콤 마케팅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던 중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골드뱅크라는 회사의 비즈니스모델을 보고 과감히 사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본인이 클릭할때마다 1원씩 적립해주는 골드뱅크 방식을, 1원씩 적립해 나가다가 100만번째 백만원을 몰아준다는 컨셉으로 ㈜백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한 옆지기의 응원과 ‘내 자신의 꿈을 선택하자’는 저의 의지로 선택한 첫 번째 사업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고, 사업에 대한 기본개념이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나름 인정받는 비즈니스모델이었지만... 일일 광고클릭수를 보장해 주어야했던 당시에,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인터넷(PC)앞에 있는 절대적 시간이 엄청 줄어들고 그 여파로 보장클릭수를 채워주지 못하였고 첫 번째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같이 모바일 시대였다면, 오히려 그 반대인 경기시작전, 기다리는 시간동안 더 많은 광고클릭수를 채우는 성공으로 이어졌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장인어른 생신때 찾은 처가에서 장모님의 모진 질타를 들었고, 그 순간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께 소리쳤습니다. '내가 선택한 남자에게 엄마가 왜 뭐라고 말을 해? 나는 학수씨 믿어!' 전 이 말에 감명받고 언젠가는 나를 믿어주고 선택해준 이 여자에게 꼭 보답을 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러던 중 2010년을 전후로 인터넷 세상에서 모바일 세상으로 전환하고, 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100만번째 광고를 보면 백만원을 준다는 컨셉이 다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광고플랫폼을 먼저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만의 몰을 모바일폰에 오픈해주고 이것을 각종 SNS로 주변지인들에게 공유해서 매출이 발생하면, 그 수익의 일부를 공유(Share)하는 방식의 모바일유통몰 쿠잉비를 먼저 오픈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모바일 신옥외광고매체 레드QR(레드큐알)을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백만엔터테인먼트처럼 ’백만번째 백만원‘ 현금경품은 물론 ’100번째 100원‘, ’1천만번째 1천만원’, ’광고를 보면 현금준다‘ 등의 컨셉을 유지 확장하는 개념의 모바일광고플랫폼입니다. 소비자가 기다리는 시간이 발생하는 공간, 예를들어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5분, 은행에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시간, 지하철타고 출근하는 30분 정도의 시간 등등이 발생하는 모든 공간에 레드칼라의 QR코드를 부착해 놓는 방식입니다. 작동하는 방식은 지하철타고 출근할 때 지하철 천정에 붙어있는 레드큐알 스티커를 네이버스마트렌즈로 스캔하면, 15초 모바일동영상이 운행되고 광고가 끝나면 각 회차에 맞는 경품이 다양하게 터지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레드QR찍고 광고보고 경품타자~!‘ 라는 아주 간단한 광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옥외매체인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당역사거리에 있는 10층짜리 건물 옥상에 LED옥외전광판광고가 있습니다. 10층건물을 가진 건물주는 이 광고비 수익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지만, 그 건물에 입주한 보쌈집 자영업자는 아무 수익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레드QR 스티커를 식탁에 붙여놓으면, 보쌈집을 찾은 고객들이 레드QR스캔하고 광고시청한 것에 대한 광고수익의 일부를 자영업자에게 공유하는 방식이라서 최근 시급상승에 따른 자영업자의 수익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일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000일 이상 맛집 위주의 포스팅을 하고 있는 중이신데요. 블로그 포스팅을 10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셨습니다. 대단한 기록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 무료교육을 시행하는 시점에, 블로그는 매일 꾸준히 포스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사가 얘기하길래, 매일 밥은 먹는거고 출근하는 5일은 맛집 소개하고 나머지 주말은 저의 일상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결국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저의 편의성 때문에 맛집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이었죠. 맛집을 고르는 철학이 있다면, 맛보다는 주인의 서비스 정신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집을 선택합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 우선으로 선택합니다. 제가 ‘파워블로거’로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린대로 저는 마케터로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블로거는 SNS 마케팅 툴의 일부인 셈이죠.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날리는 것보다는 무설탕껌 시장의 선구자, 신옥외광고매체 레드QR의 창시자 등등의 명성을 얻는 것이 목표입니다. 블로그 포스팅을 10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는 이유는 저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고자 (처음엔 100일) 시작하게 된 것이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 되었습니다. 매일 쓰다보니, 일기 쓰는것처럼 습관이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습관이 인생을 바꾸는 것을 알기에 좋은 습관은 나의 분신처럼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갔는데, 시키지도 않은 감자전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거 주문한 것 아니라고하자, 서빙하는 분이 사장님 서비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블로그 포스팅한 것 때문에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고마워서 서비스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또 한번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피자집이더라고요. 하시는 말씀이, 한번 들르시라고... 서비스로 피자 2판 드리겠다고... 이 역시 제 블로그포스팅 덕분에 오픈 초기에 고객이 많이 늘어서 감사하다고... 이럴 때 소상공인을 위한 광고유통 플랫폼을 추구하는 쿠잉비 대표로서,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 포스팅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뭉파300'이라는 이름으로 SNS 마케팅 모임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제가 2000년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할때는 온라인으로만 런칭했습니다. 결국 2002년 월드컵때 오프라인으로 빠져나간 고객들 덕분에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결국 온오프가 결합되어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요. 온라인 광고플랫폼을 런칭하더라도 오프라인에 빅마우스 집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결과로 파워블로거 강사를 초대해서 오는 분들에게는 무료로 SNS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것이죠. 그렇게 무료교육을 진행하던 중, 이름 공모를 하였고 그 중에서 ‘뭉치면 파워블로거‘가 선정되었는데, 역사/영화 300(적은 규모지만, 세상에 울림을 주는 힘)에서 300을 따와서 뭉파300으로 정했습니다. 그 이후 전국에 흩어져 있었던 블로그교육 모임에 지명을 딴 뭉파300의 브랜치 개념으로 확대 커져나간 것입니다. 처음에는 ‘초보블로거 탈출’을 목표로 10명 내외의 교육을 진행하였고, 그 이후 지역을 조금씩 넓혀나가다가 전국에 흩어져있는 소규모 단위의 SNS모임을 전국단위의 네트워크 형태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향후에는 전국단위 모임을 대전을 중심으로 출범시킨후 서울과 부산 등으로 전국규모 모임까지 확산시킬 예정입니다. 성공한 CEO들의 옆에는 그들이 사랑하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내조한 평생의 동반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김학수 대표님 역시 올해 결혼 27주년을 맞이해서 리마인드 결혼식을 올리셨습니다. 조선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병원이란 곳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중 저와 결혼한 저의 영원한 ‘옆지기’는 미모를 겸비한 결단력 있는 여성입니다. 아들 둘을 키우며 더욱 강단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던 중, 첫 번째 사업을 지지하였고 실패의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집중하는 태도로 저를 감동시킨 여자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두 번째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며 저의 가장 큰 지지자 중의 한명입니다. 두 아들에게 존경받는 이 시대의 엄마상인 우리 옆지기를 더 자랑하는 것은 팔불출일 듯 합니다. 아직 성공한 CEO는 아니지만, 우리 아들들에게 하는 말을 젊은 친구들에게도 전합니다. '첫 번째 결혼을 할 생각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배우자 선택은 나와 생각의 방향이 같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쁘고 멋진 몸을 가진 사람 선택이 아닌, 생각이 건강하고 그 생각이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함께하면 시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내가 선택한 배우자에게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상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서로를 위한 가족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결혼이 사회생활에서 주는 안정감은 앞서도 말씀드린 것인데, 서로를 존중하고 집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어떤 일을 하던지 시너지가 폭발하는 시점이 오는 법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샐러리맨이던 사업을 하던 안정감의 크기는 결혼전과 후는 100배이상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새로운 직종의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고 있긴하지만, 지금처럼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에 앞으로 AI까지 가세하면 점점 청년들의 입지는 어려워질 것이라는게 보편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인생 가치관에 맞는 것을 선택에 선택을 기울이다 보면, 분명히 나의 인생관에 맞는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100세인생 시대가 도래합니다. 1년 늦게 간다고 아주 늦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집중하는 시행착오 시기를 겪는 것도 더 큰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공식 질문) 앞으로 계획과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케터입니다. 마케터는 세상에 있던 것을 사람들에게 좀 더 편리하게 하거나, 없는 시장을 만들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네트워크 세상을 지나 소셜(Social Being)네트워크 세상으로 진화된 현재, 쿠잉비는 신옥외매체 레드QR을 런칭중에 있습니다. 지금 런칭하고 있는 레드QR의 조기 정착(2019년내)을 목표로 내년에는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큰 결과를 이뤄내는 광고를 집행함으로써, 광고주는 물론 소상공인과 광고를 시청하는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공유하는 쿠잉비가 되고자 합니다. 아직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플랫폼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2년후부터 우리가 만든 광고유통 융합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이 천만명 이상이 되는 쿠잉비 달성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꿈이 있다면, 많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나눠 줄 수 있는 행복한 마케터, 그런 마케터 김학수를 참 좋은 플랫폼으로 우리에게 혜택을 나눠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어도 100만명이 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인사 잘하고 예의바른 후배 동료 선배이지만, 3년 후에는 동문을 넘어 지인들에게 행운의 지갑을 활짝 열어 나누는 김학수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김학수 <ⓒ “Avec G”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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