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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인 변호사 <변환봉>

5/27/2019

 

'동네변호사'로서,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정당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변환봉 변호사는 오늘도 '내가 노력한 만큼 내 꿈이 이루어 지는 그날'을 위해 달리고 있다. 그가 변호사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지금껏 걸어온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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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질문) 자신의 소개를 부탁 합니다.
 
안녕하세요, ‘동네 변호사’ 변환봉입니다.
주민들이 문턱 없이 쉽게 찾아와 주고 계시죠.
예전에는 금융, 회사 사건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동네 변호사로 온갖 잡다한 일들을 처리해 드리고 있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사회생활로 점차 보폭을 넓혀간 이력이 보이십니다. 원래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지요?
 
어려서부터 정치를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의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왜 우리 주변에는 고통과 슬픔, 부조리가 많은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백성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할 일이라고 깨달았고, 잘못된 일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면서 이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의 여러 문제에 관심이 커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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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환봉 변호사는 광화문에서 법조인 양성문제와 관련해 사법시험 존치 캠페인에 참가했다.
법조인 양성문제와 사법시험 존치 캠페인에 동참하셨습니다. 사법시험 세대의 법조인으로서 현 법조인 양성문제와 로스쿨 체계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이상론에 빠져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게 된 실패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고시 낭인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변시 낭인이 등장하고 있고, 학벌 서열화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졌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더 늦기 전에 실패를 자인하고 로스쿨 체계의 탈출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변호사님 SNS를 보면 태어나 큰 수술을 받은 딸에 대해 종종 언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정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 딸 아이가 태어날 때 담관낭종이라고 담도가 부어있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대로 두면 나중에 췌장암으로 전이되는 무서운 병이죠. 태어난 지 40일이 지나 큰 수술을 받았고, 딸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수술이 잘 끝나고 저희가 아이를 안고 경과를 지켜보러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중 수녀님께서 아이를 안고 계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보육원에서 소아마비로 온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보육원의 재정 여건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만 가능하고 재활치료 같은 것은 여건이 안된다고요.
 
그 날 집에 돌아와 집사람과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부모 잘 만나 최고의 치료를 받는데,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평생 누워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다음 날 보육원에 전화해서 그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재활치료비를 모두 저희가 부담하겠다고 했고, 몇 년 후 그 아이가 걷는 사진을 받았습니다.
 
딸 아이가 아팠었지만, 그 덕에 더 큰 사랑과 나눔을 깨달았습니다.
딸 아이가 유치원에서 자기는 왜 돌 사진이 없냐고 했을 때 그 돈으로 아픈 친구들 수술시켜줬다고 하니 딸 아이도 뿌듯해 하더라고요. 제 가족 모두 힘들었지만, 더 큰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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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출연 (2013년 3월).
금융소비자들을 대리해 거대 금융기관과 싸우고 소액주주운동을 하던 시절.
당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론스타와 싸웠고, 파생상품 시장에서 외국의 대형 은행과 싸웠다.
변호사로서는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한 번씩은 꿈꾸는 직업인 '대통령'.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정치에 대해 외면하는 것이 흔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은 제대로 된 법과 제도라고 생각했고, 정치야말로 눈물을 닦아 주고 필요한 곳에 도움을 전하는 큰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40년을 살아온 지역에서 총선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가장 잘 아는 곳이라 생각했거든요.
 
정당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진보 정당의 경우 ‘있어야 할 현실’에 대해서 좋은 지향점을 제시해 주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음을 보아왔습니다. 그에 반해 보수 정당의 경우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점진적으로 바꿔 갈 수 있는지 고민을 하거든요.
 
총선에서 낙선한 후에는 성남시 수정구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으로 있는데, 당협위원장은 한 지역의 책임자로서 지역 당원들의 교육 및 관리를 담당합니다. 아울러 중앙당에서는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자유한국당의 정책과 이념,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친박 정치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 같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인재영입 1호로 소개되며 김무성 키즈로 불렸었습니다. 하지만 탄핵으로 김무성 의원이 탈당할 때 저는 남았었죠.

탄핵에 대해서도 저는 불가피한 결과였지만, 절차적으로 조급한 측면이 있었다는 견해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지지라거나 즉각 석방,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동안 젊고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분께서 아껴주셨지만, 특별히 ‘친박’이라고 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현 시국에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갈등을 조정하거나 치유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고 오히려 그 갈등을 부추겨 서로에 대한 증오를 배가시켜 상대를 철저히 억압하려는 모습이 크게 걱정됩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악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의 반대되는 의견이 있기에 내 의견이 수정되고 그래서 사회가 절충하며 발전한다는 기본적인 인식만 갖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조건 틀렸고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다른 의견이 있기에 내가 한 번쯤 더 생각하고 수정할 수 있다.”라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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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경. 진눈깨비가 날리던 어느날 골목길을 걸어가는 뒷모습.
혹시라도 유권자를 만나면 악수 하려고 오른손에는 장갑을 끼지 않았다.
변환봉 변호사는 이 사진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 '1987'에서 연희는 말합니다. '그 날 같은 거 안 와요' 하지만 역사는 이루어지죠. 변호사님이 꿈꾸는 '그 날'은 어떤 모습입니까?
 
내가 노력한 만큼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모두가 잘산다는 이상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이루어갈 수 있고, 그 노력의 대가가 존중받는 사회죠.
기회는 평등하지만, 노력의 결과에 대한 차이는 인정받고 존중받는 날입니다.

 
공식 질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정치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정치는 내가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만들어질 때 주저 없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지, 내가 그 길을 만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제게 그에 부합하는 소명이 있게 될 것이고, 저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인터뷰 Avec 'G' 글렌다박 수석기자
사진 제공: 변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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